[한규만의 사회와 문화 (68)]우리 아동·청소년의 삶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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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만의 사회와 문화 (68)]우리 아동·청소년의 삶이 위험하다
  • 경상일보
  • 승인 2025.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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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 영어영문학

우리 사회는 현재 계엄과 탄핵 그리고 특검의 뉴스 속에 파묻히고, 민생경제 회복을 외치고 있다. 어른들도 먹고살기 힘들지만, 우리 아동·청소년의 삶 또한 팍팍하다. 2025년 5월에 발표된 유니세프(UNICEF) 소속 이노첸티(Innocenti)연구소의 최근 보고서가 눈에 밟힌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아동·청소년의 종합적인 복지(Well-Being) 상태는 비교대상 36개국 중 종합순위 27위에 그쳤다. 한국 경제는 세계 10위권이고 군사력은 세계 5위 수준이라는데, 우리 민족의 미래인 청소년의 삶의 질은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무언가 잘못됐고 한국의 미래가 밝지 않다.

유니세프 보고서는 2018년에서 2022년까지 세계 아동·청소년의 생활 만족도, 청소년 자살률, 아동 자살률, 과체중 비율, 학업성취도, 사회 교류 등 6개 지표로 세계 아동·청소년의 복지를 분석한다.

정신건강, 신체건강, 역량 세가지 영역으로 국가순위를 매기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최상위국가는 네덜란드, 덴마크, 프랑스이며, 대한민국은 일본, 슬로베니아와 함께 사회·감성·학업 역량(skills) 영역에서만 상위를 차지하고, 정신건강은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한국 아동·청소년의 삶이 위험에 처해 있다.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첫 번째 특징은 기초학력 분야에서 한국 아동·청소년의 성취도가 비교 대상 40개국 중 1위로 다른 선진국 청소년을 압도했다.

이 지표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읽기 능력과 수학 능력을 가진 15세 학생의 비율로 측정됐는데, 한국은 세계 1위로 79%를 기록했으며, 뒤이어 아일랜드(78%), 일본(76%), 에스토니아(75%) 순이었다.

두 번째 특징은 학업성취도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지표는 정신건강(mental health) 분야로서 한국 청소년자살률은 42개국 중 5위, 생활만족도는 36개국 중 30위로 최하위권이었다. 2020~2022년 3년간, 한국에서 15~19세 청소년의 인구10만명당 자살률은 직전조사 7.3명에서 10.33명으로 수치가 크게 올랐다. 충격이다. 자살자 수는 370명으로 하루에 한 명씩 자살하는 셈이다. 다각적이고 실효성있는 대처가 시급히 필요하다.

어른들이 학생들의 압도적인 학업 성취라는 긍정적인 면만 자랑하고 있을 때, 우리 청소년들은 그 뒤에 가려진 최악의 정신건강과 높은 자살률에 신음하고 있다.

모순적이지만 이 두 가지 특징은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되어 있다. 청소년 그룹이 입시와 취업 등에서 과열경쟁에 빠져있다. 근본적 제도개혁 없이는 한국 청소년은 불행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청소년들이 ‘헬조선’을 외치겠는가?

보고서의 세 번째 특징은 전체적인 생활만족도에서 중간점수 이상으로 답한 15세 학생 비율은 한국은 65%에 불과했다. 만족도 상위 1위와 2위인 네덜란드와 핀란드는 각각 87%, 82%로 월등히 높았다. 한국 청소년의 행복지수가 상당히 낮은데 국가의 밝은 미래가 보장되겠는가?

보고서의 네 번째 특징으로 신체건강(physical health) 분야에서도 한국은 40개국 중 28위로 전체적으로 중하위권에 속했다. 비만율은 33.9%로 43개국 중 7위로 높았다. 운동도 부족하고, 즉석 가공식품과 대기오염, 합성 화학물질 노출 등으로 한국 청소년들의 신체적 건강에 위험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높은 학업 성취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삶 만족도와 정서적 안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신기루 상태이고, 미래 업무 추진에 자양분이 될 실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단순암기와 단기성취 중심의 치열한 점수따기가 마치 청소년판 ‘오징어 게임’을 보고 있는 듯하다.

중고등학교에서 타율적 학습 태도가 고착되면, 대학에서 자기주도적 학업추구와 창의적 학업은 물거품이 된다. 우리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고민해야 할 때이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 영어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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