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도 어느덧 절반이 지났다. 지난 상반기를 돌아보면 남구의회 결산검사 대표위원, 입법 활동 등 여러 의정활동이 있었지만 본회의장 수어통역사 배치에 일조한 점이 가장 큰 보람으로 느껴진다.
울산 남구의회는 지난 2월 새해 첫 임시회부터 울산 기초의회 최초로 본회의 수어 통역 서비스를 시작했다. 본회의장에 수어통역사가 배치돼 제267회 임시회 본회의 과정 전체가 실시간 수어로 통역되며 의회 누리집에 생중계됐다.
이는 바로 본의원이 직접 제안했던 정책으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청각·언어장애인들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그동안 많은 주민들이 의회 생중계를 시청하며 지역 현안에 관심을 갖는 데 비해 청각장애인들은 화면만 바라보다 시청을 곧 포기해야만 했다. 수어 통역이 없어 어떤 발언이 오갔는지, 어떤 결정이 내려졌는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불평등을 줄이고자 지난해 행정사무감사에서 남구수어통역센터와의 협력을 제안했고 마침내 올해 실현이 됐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남구에는 현재 약 2000명의 청각·언어장애인이 등록돼 있지만 수어통역사는 4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하루에 1명당 평균 20건 이상의 수어통역 요청을 소화하고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 ‘수어가 없어 겪는 고통’이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얼마 전, 신정동의 한 청각장애인 어르신께서 경미한 교통사고로 경찰서에 출석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과정에서 수어통역사가 배정되지 않아 자신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조차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고 결국, 합의 불가로 사건이 종결됐다.
또 고혈압으로 응급실을 찾은 청각장애인 청년이 의료진과 소통이 되지 않아 어떤 약을 처방받는지도 모른 채 치료를 마치고 나와야 했다. 본인의 병명을 필담으로 수십 차례 묻고 답하다 결국 눈물을 쏟았다는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행정의 무관심이 곧 ‘침묵 속의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절감했다.
또 이혼 소송 중인 청각장애인이 법정에 수어통역사가 없어 변호인조차 구체적인 주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패소 판결을 받은 일도 있었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는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사례이다.
수어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수어는 단지 보조수단이 아니라 청각·언어장애인들에게는 모국어와 같은 존재이다. 한국수어는 2016년 대한민국 공식 언어로 법제화됐으며 국가와 지방정부는 수어 사용자들의 의사소통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도 통역사 부족, 전문 교육기관 부재, 수어 교육 기회의 불균형 등으로 ‘형식만 있는 권리’에 머물고 있다.
남구의회 수어통역 생중계가 의미 있는 시작이었다면 이제는 행정·의료·사법·교육 등 일상 전 영역에서 수어가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AI 수어 통역 기술의 도입, 청소년 수어 교육 확대, 민원창구 내 수어 통역 배치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검토해야 하며, 이를 위한 예산과 인력을 적극적으로 확보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듯 누리는 말과 글의 세계에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더 넓은 길을 만드는 것이 행정과 또 의회의 역할이다.
필자는 올 하반기에도 장애인들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청각·언어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들이 ‘불편한 시민’이 아닌 당당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관련 조례 제정 등 행정의 촘촘한 손길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장애인 정책은 특별한 ‘배려’가 아닌 누구나 차별 없이 누려야 할 ‘권리’니까 말이다.
최덕종 울산 남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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