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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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가
  • 경상일보
  • 승인 2025.08.1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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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준 변호사

얼마전에 ‘일터로 내몰린 고령층, 65세 이상 고용률 40% 돌파’라는 신문 기사를 봤다. 생계비를 벌고 삶의 보람을 찾고자 하는 것이겠지만 비정규직 비율이 60% 넘고 월평균 65만원 정도 번다고 하니 노인 빈곤율이 높다는 뜻이다. 노야의 가치가 단순 노동에 머무르는 듯하다. 또한 ‘65세 이상이 국내 진료비 절반 쓰는 시대’는 어떤가. 고령층 환자들의 한해 병원 진료비가 전체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늘어 올해는 46%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노인 진료비 증가는 건강보험 재정에 압박이 된다는데 노인들의 존재가 사회에 부담으로만 작용하는가.

과거는 단순하고 안정되나, 현재는 늘 복잡하고 변화해 예측 불가능하다. 변화와 복잡함을 노인들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디지털화로 새로 지은 아파트에서 시설 이용 방법을 몰라 입주 노인이 사용을 포기했다는 웃픈 일조차 있다고 한다. 일상의 사소한 일이지만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거나 주차요금을 정산하는 경우 익숙하지 못해 당황하는 노인들도 있다. 심신이 쇠락해져가는 노인들은 이래저래 힘들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가끔 하는 자조섞인 말이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고. 노인들이 존중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살아가기 힘든 현실에 대한 은유다. 동명의 미국 영화가 있다. 영화는 세상의 복잡성과 도덕의 모호성 그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의 판단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줄 뿐 악의 처벌과 정의의 실현은 보여주지 않는다.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거침없이 살인을 저지르지만 나이 든 보안관은 무기력하다. 현명하고 신중한 인물이지만 비합리적이고 잔인하게 변해버린 혼돈과 무질서의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감당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정의를 실현할 수 없음을 느끼고 은퇴를 선택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는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의 첫 구절에 나온다. 이어서 시는 ‘온갖 잉태하고 태어나고 죽는 것들, 관능의 음악에 사로잡혀 모두가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를 무시하고 있다. 늙은이란 그저 하찮은 것일 뿐 막대기에 걸린 누더기’라고 노래한다. 고대도시 비잔티움은 지성과 영원을 상징한다. 욕망과 욕정에 사로잡혀 순간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이든 사람들은 더 이상 오늘날의 사회는 노인들이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한한 젊음에 탐닉하는 현실의 관능적인 세계를 떠나 시간을 초월한 지성과 영원의 세계 비잔티움을 향해 항해를 떠난다는 것이다. 노인이 가진 지성과 영원에 대한 동경을 표현했다.

현실에서 노인들은 주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외로움·빈곤·질병 등에 시달린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패배자처럼 취급받는 경향도 보인다. 노인의 지혜나 경험은 존중받지 못하고 예측불가성과 가치관의 혼돈 등 낯선 환경이 노인들앞에 놓여 있다.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변화 또한 물살처럼 빠르다. 변화와 복잡함에 적응하는 일이 노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응하지 않으면 소외되고 도태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노마드는 못돼도 디지털 문맹이 돼서는 안된다.

노인은 현재 젊은이의 미래 모습일 수 있다. 축적된 경험을 가진 존재이지 결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다. 비록 단순한 일에 종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경험과 지혜로써 다양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지혜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참여해 리더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경험을 기반으로 교육과 연구 분야에서 심도있는 이해를 전수할 수도 있다.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움에 도전한다면 가능성은 열려 있다.

영화의 보안관처럼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노인들이 단순 노동에 내몰리고 고령층의 진료비가 늘어나는 것은 현실이지만 노인의 지성과 지혜는 엄연히 살아 있다. 지성과 지혜의 세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지 않다.

박기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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