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금 칼럼]정책에 겸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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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금 칼럼]정책에 겸손하라
  • 경상일보
  • 승인 2025.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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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실용’을 표방하며 잠시 숨을 고르던 현 정권은 한여름의 폭염보다 더 거칠게 일방적인 정책질주를 시작하고 있다. 국민들의 여론이나 언론의 우려에는 아예 관심도 없는 듯하다. 무기력하게 내분만 거듭하면서 헛발질을 하고 있는 야당에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다. 겨우 필리버스터로 대응하고 있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할 뿐이다.

최근 방송법이 통과됐고, 머지않아 이른바 노란봉투법, 검찰관련법 등 국민경제와 국가의 수사역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차대한 법률들이 충분한 논의와 검토 없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 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저런 정책변동(policy change)이 초래됐고, 이로 인해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 왔다. 예컨대 4대강 보의 유지와 해체, 원전 중단과 재추진 등을 둘러싸고 과도한 논란이 거듭됐다. 특히 대북정책을 비롯한 대외안보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급격한 변화를 겪어 왔다.

왜 이런 상황이 되풀이 되는가. 흔히 생각하듯 정치세력마다 추구하는 정치이념이나 정책지향이 다르기 때문일 수 있다. 또 현재나 미래의 국내외 여건변화에 대한 해석과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미국과 중국 간의 관계, 경제 상황의 장기적 변화 등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이해하면 이에 대응하는 정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느 경우든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념이나 정책역량이 상대보다 더 우월하다는 집권세력의 ‘착각’이 정책변화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정보나 자료의 분석결과와 그 동안의 정권교체 경험이 보여주듯, 정책변동이 기대한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정책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념지향에 부합하는 정책만을 고집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집권세력 스스로의 이익이나 지지층의 주장에 부합하는 정책을 시행하려는 정치적 동기가 도사리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개정하려는 검찰법, 방송법, 노동법 모두 마찬가지다. 또 다른 문제는 정책변동이 매우 단기적인 시각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적인 성과보다는 단기적으로 지지세력에게 보여주기식 정책을 도입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등장한 정책들은 상당수가 당초 기대한 성과에 미치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공수처를 만들었지만 거의 존재감이 없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보 해체로 인해 물이 부족한 지역이 생겨나고, 대북 유화정책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했으며, 탈원전은 원활한 전기수급에 큰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이러한 과거 경험에 비춰 볼 때, 정권이 바뀌었다고 무리하게 무조건 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은 자제돼야 한다. 이전 정부 역시 정책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요소를 검토했으며, 그중에는 상당히 중요한 사안도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을 완전히 무시하고 전 정부의 정책을 전부 잘못된 것으로 몰아세우며 현 정부의 정책만이 유일하게 옳다고 주장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자신들의 정책만이 제대로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허황된 망상일 뿐이다. 어떤 정권도 완벽한 정책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책 앞에서는 겸손할 필요가 있다.

정책은 주도세력이 생각한 것처럼 작동되지 않는다. 수많은 변수가 영향을 미치고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한다. 더구나 정책대상집단이라 할 수 있는 국민들이 정부가 의도한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국민들마다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무시하고 국민들의 무조건적 순응을 요구하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정책추진은, 과거 사례에서 보듯 실패로 귀착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므로 정책결정에는 숙의(熟議)과정이 필수적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소수 야당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논의를 거듭해야 한다. 아무리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집권당이라고 해도, ‘추석 전까지’라는 인위적 시한을 설정해 놓고 입법을 강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방적 법안통과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심각히 훼손하는 것이며 정책의 정당성을 무너뜨린다. ‘입법독재’라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집권세력은 정책에 좀 더 신중하고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기 바란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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