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시원함’의 권리, ‘불편함’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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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시원함’의 권리, ‘불편함’의 가치
  • 경상일보
  • 승인 2025.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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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명호 한국동서발전 사장

폭염은 더 이상 예외적 이변이 아닌 일상이 됐다. 기후 데이터 전문 매체 ‘카본 브리프’는 올해가 1850년 관측 이래, 사상 두 번째 혹은 세 번째로 더운 해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상반기만 놓고 보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덥다.

이런 무더위 속에서 이제 냉방은 사치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어린이, 노약자, 만성질환자, 에너지 취약계층에게 폭염은 생존을 위협하는 재난이다. 에어컨은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보호막이며, 냉방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권리가 되었다.

그러나 시원함은 대가를 요구한다.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은 도시의 열섬현상을 부추기고, 전기 소비 증가는 온실가스를 배출해 지구를 더 덥게 만든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전력 수요가 전체 에너지 수요 증가(2.2%)보다 가파르게 증가(4.3%)했다. 에어컨이 사용하는 전력은 전 세계 총 전력의 10%에 달하고, 이로 인한 온실가스는 전체 배출량의 4%에 이른다.

에어컨은 우리의 생활을 지탱하는 기계이지만, 도시를 더 덥게 만들고 지구의 숨통을 죈다.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이 98%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에어컨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은 폭력적이며,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다.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게 된 지금, 모두가 시원함을 누리면서도 지구의 미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첫째로는 냉방의 공공성을 확장해야 한다. 정부는 매년 5월15일부터 9월30일까지를 폭염 대책기간으로 지정하고, 전국 약 7만여곳의 ‘무더위쉼터’를 운영하며 폭염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국동서발전도 에너지공기업으로서 개별 가정의 냉방 환경을 개선하는 ‘신박한 에너지 정리’를 통해 냉방권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2021년 8월 울산 중구 긴급위기가정 1호 가구를 시작으로, 지자체와 교육청의 추천을 받아 고효율 냉방기기 보급과 단열 시공을 지원하고 있으며, 연간 평균 60만원 상당의 에너지 비용 절감을 도왔다. 지난해까지 총 24곳에 지원을 완료했다.

둘째는 에너지 소비의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냉방기기의 평균 효율만 높여도 2050년 냉방 전력 수요를 기준 시나리오(6200TWh) 대비 약 45% 줄인 3400TWh까지 낮출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는 2016년 유럽연합 전체 전력 사용량(3322TWh)에 맞먹는 엄청난 양이다.

한국동서발전도 산업단지, 주택,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고효율 설비 전환 컨설팅을 확대하며 에너지효율화를 돕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울산시와 함께 ‘지역 에너지신산업 활성화 지원사업’을 추진하여 UNIST 등 울산 소재 주요 대학과 공공시설 총 10곳에 냉난방, 조명 자동제어 스마트에너지 장치와 자가소비용 태양광 발전시설을 구축했다.

마지막으로, 일상의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여름철 출퇴근 복장을 간소화하는 ‘쿨비즈’ 캠페인처럼 작은 문화의 변화가 에너지 절약을 이끌 수 있다. 에어컨의 설정온도를 단 2℃ 높이고 선풍기를 함께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전력 사용량을 30% 가까이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실제 IEA의 싱가포르 사례에 따르면, 26℃에 선풍기를 병행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24℃ 단독 냉방보다 더 쾌적하다고 답했다.

절전이 곧 불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편안함의 습격>의 저자 마이클 이스터는 “우리는 지나치게 안락한 환경 속에서 회복력을 잃고 있다”라고 책에서 말한다. 약간의 불편을 받아들이는 습관은 오히려 우리의 몸과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 에너지 절약은 불편이 아닌 회복력을 기르는 선택이며, 삶을 보다 유연하고 지속 가능하게 조정하는 방식이다. 더위 속 시원함은 권리이자, 책임이다. 누구도 폭염 속에 홀로 남겨지지 않아야 하며, 동시에 모두가 지구를 덥히는 손길을 조금씩 거두어야 한다. 냉방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시원함을, 지구에는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길. 두 가지를 동시에 지켜내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한국동서발전은 공공성과 에너지 전문성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냉방과 에너지 절약이 양립할 수 있도록 기술적 해법과 지원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모두가 시원한 여름을 누리되, 그 시원함이 다음 세대의 여름을 해치지 않도록 지금 우리 모두가 함께 행동해야 할 때다.

권명호 한국동서발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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