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소의 굉음과 정유공장의 불빛은 여전히 울산을 밝히고 있다. “돈 벌려면 울산으로 가라”는 말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치열한 삶의 연속 속에서, 우리는 오직 미래만을 바라보며 달려왔다. 그러나 이제 그 속도와 방식만으로는 시민의 삶을 만족 시킬 수 없다. 산업이 활기를 되찾더라도, 시민의 표정이 밝지 않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없다.
현재 울산은 산업 구조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기계와 기술 중심의 도시에서 데이터와 창의성이 흐르는 도시로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산업만으로는 가치 있는 삶이 따라오지 않는다. 산업이 도시의 ‘몸’이라면, 문화는 도시의 ‘숨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나라살림연구소는 전국 243개 지자체의 문화 예산을 조사했다. 본예산 310조원 중 문화예술 부문 예산은 4조9718억원으로 1.6%를 차지했다. 지역별로 보면 광주가 3.0%로 가장 높았고, 그다음 순으로 대구(2.02%), 전북(1.87%), 부산(1.84%), 세종(1.84%)으로 나타났으며, 울산은 1.78%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관내 구·군별 예산 비중은 울주군 1.61%, 북구 1.49%, 중구 1.40%, 남구 0.54%, 동구 0.23%로, 한쪽으로 편중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울산이 문화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예산의 증액과 구·군 간의 편차를 줄일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문화예술 예산은 예술가와 문화기관의 생존을 좌우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문화 예산이 축소되면 예술가들은 창작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우며, 결과적으로 예술의 다양성과 혁신성이 훼손된다. 또한, 공연이나 전시 등 문화 향유 기회가 부족으로 지역 자금의 유출 및 인구 유출로도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지역 문화의 소멸, 지역 불균형을 심화 등 많은 문제점을 야기 시킨다.
그럼, 울산이 산업의 도시를 넘어 문화 중심의 도시로 나아가려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
타 시도의 사례를 살펴보면 그 방향은 더욱 분명해진다.
광주는 예산의 3%를 문화예술에 투자하며 ‘생활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공공도서관, 생활문화센터, 주민자치센터를 결합한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으며, ‘문화마을 조성 사업’을 통해 골목마다 생활예술을 확산시키고 있다.
부산은 ‘영화 도시’라는 정체성을 활용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글로벌 영상 콘텐츠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2022년부터는 ‘부산생활문화비전 2030’을 수립해, 생활문화시설 100곳 확충, 생활예술인 지원 시스템, 주민문화공간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강원도는 ‘강원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지역별 특색을 살린 문화관광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정선, 평창, 인제 등 소도시를 중심으로 ‘문화도시형 소도시’ 모델을 실험하고 있으며, ‘폐광지역 문화재생사업’을 통해 지역 공동체 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병행하고 있다.
이처럼 타 시도들은 문화예술 분야 예산을 단순한 소비성 비용이 아닌, 도시경쟁력 강화와 시민 삶의 질 향상의 핵심 투자로 인식하고 있다.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문화공간과 프로그램 확충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가 있어야 삶에 숨통이 트이고, 시민의 마음이 돌아온다.
울산도 지속 가능한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생활문화 인프라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역 예술인이 안정적으로 창작할 수 있도록 돕고, 문화회관, 작은 도서관, 생활예술공간 등을 시민 삶 가까이에 배치하여 보다 많은 시민이 일상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울산의 미래를 바꾸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산업 구조는 변화하고 있지만, 시민의 일상은 여전히 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바로 ‘문화예술’이다. ‘산업수도 울산’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우리를 지탱하는 자부심이다. 그러나 이제 이 이름에 한 줄을 더해야 한다. ‘문화가 흐르는 산업수도, 기술과 예술이 공존하는 울산’으로 말이다.
홍유준 울산시의회 문화복지환경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