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로봇과 공존하는 산업현장, AI시대의 안전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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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로봇과 공존하는 산업현장, AI시대의 안전을 묻다
  • 경상일보
  • 승인 2025.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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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일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AI산업안전시스템과 교수

2016년, 바둑계의 전설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인간 최고수와 인공지능의 대결에서 알파고는 무려 4승 1패로 승리했다. 단 한 번의 패배를 안긴 이세돌 9단의 승리도 놀라웠지만, 알파고가 인간의 스타일을 학습하고 스스로 전략을 세운다는 점은 AI의 무서운 학습 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인공지능은 더 이상 바둑판 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의 산업 현장과 일상생활 속 깊은 곳까지 이미 들어와 있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는 이러한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대표 사례다. 이 공장은 산업 현장에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본격적으로 융합된 미래형 스마트 팩토리다. 이곳에는 총 950대 이상의 로봇이 배치되어 프레스, 용접, 도장, 조립, 품질 검사 등 자동차 생산의 대부분 공정을 수행한다. 특히 자율이동로봇(AMR), AI 기반 카메라 시스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까지 투입되어, 사람이 수행하기 힘들었던 고위험 작업이 대부분 로봇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이로 인해 공장은 과거의 시끄럽고 복잡한 모습에서 벗어나, 조용하고 깨끗하며 인간 중심으로 설계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안전관리의 방식에도 혁신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기존의 전통적 안전관리는 문서 중심의 사후 대응에 그쳤다면, 이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선제적 위험 예측과 실시간 대응이 가능한 ‘스마트 안전관리’ 체계로 나아가고 있다. AI는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현장을 24시간 모니터링하며, 위험 요소를 감지하고 즉각 경고함으로써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는 로봇이 대신 수행하고, 안전관리자는 이를 기반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고 현장을 관리하는 보다 전문적이고 전략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로봇과 사람이 함께 일하는 공간에서는 더욱 정밀하고 체계적인 안전 조치가 필수다. 협동로봇은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비전 시스템과 센서가 설치되어 있어 충돌 위험이나 이상 상황 발생 시 즉시 작동을 멈춘다. 최근 SKT가 선보인 ‘AI 산업안전 패키지’는 이러한 기술을 통합한 솔루션으로, 산업 현장에서 각종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고 경고 알림을 통해 사고를 예방하는 시스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기술 발전은 새로운 도전 과제도 동반한다. 대표적으로 안전관리자의 역할 축소에 대한 우려가 있다. 과거에는 문서 작성, 사고 기록, 교육 등이 주요 업무였다면, AI가 이 과정을 자동화하면서 인력 수요가 감소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한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발생하는 노동시장의 변화, 로봇의 판단에 의한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 문제, AI가 창출한 콘텐츠나 기술의 지식재산권 문제, 그리고 로봇에 대한 법적 지위와 윤리적 기준 설정 등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 시대의 안전관리는 단순히 기술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 사람과 기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안전관리자는 변화하는 기술 흐름을 이해하고, AI와 협업하며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작업 환경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반복적인 노동에서 벗어난 인간은 창의적이고 통찰력 있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우리는 사고 이후의 대응이 아닌, 사고를 미리 예측하고 방지하는 ‘능동적 안전관리 시대’에 진입했다. 인공지능을 단순히 위협이나 대체의 존재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안전의 파트너로 수용하고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술은 방향을 잃지 않을 때 비로소 인류에게 이로운 도구가 된다. 산업안전의 미래는 인간의 선택과 준비에 달려 있으며, 그 선택이 지금 우리 눈앞에 와 있다.

이정일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AI산업안전시스템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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