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면 시행된 고교학점제가 ‘수업의 질’이라는 교육의 본질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교사들의 성토가 거세다. 최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사노동조합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원 3단체가 공동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울산을 포함한 전국 고등학교 교사 4162명 중 절대다수가 고교학점제 시행 이후 수업 준비와 평가, 생활지도가 행정 업무에 매몰돼 수업에 집중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수업이 기록에 종속된 구조’라는 점이다. 울산지역 교사 응답자 중 92.5%가 1~3개 이상 과목을 추가로 맡고 있으며, 이로 인해 80%는 수업 준비가 부족해 수업 질이 떨어졌다고 했다. 이는 단순한 피로 문제가 아니다. 수업의 깊이와 질이 무너지고 있다는 교사의 절규다. 여기에 평가 기준 구안의 어려움, 민원 대응 증가가 겹치며 교사는 수업 전문가가 아니라 평가 오류의 책임자로 전락하고 있다.
고교학점제의 문제를 키우는 주된 원인은 바로 기록과 행정 부담이다.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작성 분량 증가, 입력 기한 촉박, 중복 기재 부담 등은 교사들의 하루 대부분을 문서 작업에 붙잡아두고 있다. 출결 시스템 역시 제대로 정착되지 않아, 교사들은 학생의 출결을 확인하기 위해 교과 교사들과 반복적인 정정 작업을 해야 한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인 미이수제조차 실효성을 잃었다. 울산 교사 60%가 보충지도를 하지 않은 학생에게도 미이수 처리를 못 했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학교 분위기, 민원 우려, 기준 부재였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점수 ‘퍼주기’와 허위 기록의 유인이 커진 상황이다.
이 모든 문제는 고교학점제의 ‘이상적 설계’가 현장과 괴리된 데서 비롯됐다. 선택 중심 교육이라는 이상은 환영받을 수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교사 수급, 과목 운영 체계, 평가와 기록의 방식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그 설계는 정책이 아니라 기획서에 불과하다.
교사들은 구조적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출결 권한을 담임에게 일원화하고, 세특 기재는 학점과 연동해 축소하며, 미이수제와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는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도 교원 정원 확대와 고교학점제 전담 조직 구축을 선결 과제로 꼽는다.
교사들의 지적은 현장의 애로 호소가 아니라 우리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지금 개편하지 않으면 고교학점제는 실패한 교육 실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교육당국은 뼈대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저작권자 © 울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