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재사고는 사회적 타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지난 7월29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던진 이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매년 같은 현장에서, 같은 이유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다. 이는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예방을 외면한 범죄라는 선언이다. 대통령은 반복적으로 사망사고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 영업정지, 공공입찰 제한, 매출액 연동형 과징금 부과 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안전을 외면한 기업의 가장 민감한 지점, 바로 ‘경제적 손실’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안전투자가 일어나지 않는 현실을 겨냥한 것이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3년이 지났지만, 산재사망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2023년 재해조사 대상 사망자는 598명, 2024년은 589명으로 소폭 줄었고, 2025년 상반기 사망자는 287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9명 감소하는 데 그쳤다. 특히 건설업 경기침체를 감안할 때 사망자 수가 줄지 않았다는 점은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올해 8월에도 비극은 이어졌다. 경북 청도 열차 충돌사고(사망 2명·부상 5명), 순천 레미콘 질식사고(사망 2명·중상 1명) 등 대형사고가 연달아 발생했다. 법과 제도가 존재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죽음을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오는 9월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근로감독관의 작업중지권 부활, 기업 안전투자 내역 공개, 산업안전보건 공시제도 도입 등이 포함된다. 기획재정부는 다수 사망사고 기업을 공공입찰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금융위원회는 대출 불이익을 검토 중이다. 또한 2030년까지 산재사망만인율을 현재 0.39에서 OECD 평균인 0.29로 낮추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산재사망의 80%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그 절반이 건설업에서 발생한다. “월급도 못 가져가는데 무슨 안전투자냐”는 중소 건설사 대표들의 하소연은 흔하다. 하지만 본질은 단순하다.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기본 안전수칙만 지켜도 대부분의 사고는 막을 수 있지만, 저가 수주와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안전관리비는 늘 가장 먼저 깎인다.
선진국은 안전을 도덕이나 윤리가 아닌 ‘경제의 언어’로 다룬다. 영국은 사망사고 발생 시 매출의 최대 10%를 벌금으로 부과하며, 실제로 한 건설사가 55억원을, 2023년 철도 유지보수 사망사고에는 26억원을 부과했다. 호주는 최대 130억원까지 벌금을 매기며, 2025년 빅토리아 석재공장 사망사고에서는 42억원이 선고됐다. 미국도 건당 2억원 이상, 반복 위반 시 수십억원으로 치솟는다. 2024년 앨라배마 제재소 사망사고에는 35억원이 부과됐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안전을 무시하면 더 큰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경영자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솜방망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망사고의 벌금은 300만~500만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법위반 사업주에 대한 벌금이 평균 1억원 수준에 그쳤다. 시행 3년 동안 유죄 판결 15건 중 실형은 단 한 건뿐이었다. 이 정도로는 기업의 경영계산서를 흔들 수 없다.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범죄의 기대 이익보다 처벌의 기대 비용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기업은 징역형보다 재무제표에 찍히는 손실을 더 두려워한다. 안전에 투자하는 비용보다 사고로 인한 손실이 크다는 사실을 체감할 때,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된다.
기업은 돈에 의해 움직인다. 기획재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입찰 제한은 대형 건설사에 강력한 압박이 될 것이고, 금융위원회의 대출 불이익은 법정 벌금보다 더 실효적일 수 있다. 무엇보다 기업 규모에 맞춘 매출액 연동형 벌금이 도입돼야 한다. 사업장 규모를 고려하지 않는 획일적 소액 벌금으로는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
안전은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생존의 문제다. 기업이 안전을 비용이 아닌 생존을 위한 투자로 인식할 때, 매년 반복되는 비극은 멈출 수 있다. 돈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것이 기업 경영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사회가 기업에 요구하는 최소한의 윤리다.
정안태 울산안전(주) 대표이사 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