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관광대국 일본의 관광업계를 망연자실하게 만든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다.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항공기 예약이 무더기로 취소되고 숙소 예약 캔슬 사례도 이어졌다. 일본 만화가 타츠기 료의 ‘내가 본 미래’에서 예언된 ‘2025년 7월 대지진’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이 만화가는 “대지진이 7월5일에 발생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날짜까지 꼽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그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서 대지진 예고는 일단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제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한국인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진’이라는 단어는 우리와는 상관없는 남의 나라 일이라고 느끼고 살았다. 다른 곳에서 크고 작은 지진 소식이 들려오고 그 피해 상황이 알려져도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우리는 지진의 안전지대’라는 무의식 속의 안도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최근 몇 년 사이 동남부 해안 지역인 경주, 포항, 울산 등에서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고, 어느덧 그 사실이 우리 일상에 깊이 자리 잡았다. 지난 2016년 경주(진도 5.8), 2017년 포항(진도 5.4)에서 발생한 지진은 우리에게 자연의 경고이자, 재난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급선무인지 일깨워준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지진으로 따지자면 울산과 경주는 원전과 산업의 집적지라는 구조적 위험 요인을 안고 있다. 위험성이 상존하는 이 지역에 지진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다른 나라 지진 사례에서 보듯 경주·포항의 지진 규모라면 피해가 상상 이상으로 커졌을 수도 있다. 최소한의 대비 덕분이었든, 아니면 하늘이 내린 운 덕분이었든 지난 지진은 국민에게 지진 대비가 절실하다는 강한 위험신호를 보낸 채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만을 남겼다. 그렇지만 운은 언제까지나 되풀이될 수 없다. 지진 방재와 관련해서는 일본의 방재시스템에서 배울 점이 많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지진 방재시스템을 갖춘 국가다. 수십 년간 축적한 지진 관측 기술과 네트워크 인프라를 바탕으로 지진 조기경보 기술 발전에도 중요한 성과를 쌓아가는 일본은 많은 국가들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일본 지진 방재의 핵심은 ‘신속 경보’와 ‘물리적 대비’에 있다. 기상청이 운영하는 긴급지진속보 시스템은 P파가 감지되면 S파 도달 이전에 지진 발생을 즉시 경고해 몇십 초 단위의 골든타임을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내진설계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기존 건물에 대한 내진 보강 사업도 활발히 추진 중이다. 면진(免震) 구조나 제진(制震) 구조 등의 첨단 기술도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여기에 전국적인 지진계 네트워크, 방송 인터넷 휴대폰 등 다양한 통신망을 활용한 경보 전파, 엘리베이터 정지나 가스 차단과 같은 자동화 대응시스템, 정기적 방재훈련과 다국어 안내체계까지 일본의 대응은 다층적이면서도 전방위적이다.
우리 지역 역시 지진에 관한 한 이런 선진 방재시스템의 연구와 도입이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 그 중에서도 지역 맞춤형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을 갖추는 일이 우선이다. 기상청의 긴급지진 속보를 울산·경주·포항 지역의 주요 시설과 연계해서 공장·학교·병원 등에서도 즉시 대응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하고 기존 건물에 대해서도 설계보강을 의무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공공시설뿐 아니라 민간 건축물에도 내진 기준을 강화하고, 지원과 점검을 병행해 안전 기반을 확실히 강화해야 한다. 산업시설 밀집한 지역의 특성을 감안한 산업단지 특화 대응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진으로 인한 화학물질 누출이나 화재 등 2차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매뉴얼과 훈련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방송, 인터넷, 휴대폰 연계 통합 경보망을 도입하는 한편, 자동으로 가스 차단과 엘리베이터 정지를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도 설치해야 한다. 울산·경주·포항 지역에 ‘방재의 날’을 제정해 시행하는 등 정례적 방재훈련을 실시하고, 외국인 근로자 대상의 다국어 안내 체계를 마련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지진은 아직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알 수 없고 그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자연재해다. 다만 그에 대한 대비는 예측에 기반해 제때 이루어질 수 있다. 울산이 일본처럼 ‘재난에 강한 지역’으로 거듭나려면 지금 행동에 나서야 한다. 시민의 안전,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한 준비는 결코 늦지 않다. 지금이 바로 그 시작점이다. ‘준비된 도시만이 안전하다’는 명제는 지진 대비에 있어서 더 큰 설득력을 갖는 금과옥조가 아닐 수 없다.
백현조 울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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