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전기요금 개혁과 국가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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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전기요금 개혁과 국가 경쟁력
  • 경상일보
  • 승인 2025.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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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욱 건국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부원장

SK넥실리스가 국내 전기요금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일부 설비를 전기료가 약 40% 저렴한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는 전기요금 문제가 가정의 생계비 차원을 넘어 국가 제조업 경쟁력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제조업의 숨은 경쟁력 중 하나는 값싸고 안정적인 전기료였다. 철강·반도체·자동차 산업은 저렴한 전기를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서 품질과 가격을 동시에 갖춘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그러나 이제 단순한 저가 전력만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지키기 어렵다. 국제사회는 가격뿐 아니라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과 친환경성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40%를 달성해야 하고,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Net Zero)을 이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요금 체계 개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문제는 전기요금이 여전히 원가주의와 기후정책 목표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위기 심화와 함께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국제 규제는 강화되고 있다. 제조업체는 앞으로 ‘저렴한 전기’와 ‘친환경 전기’를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지게 됐다. 특히 석탄발전에 계속 의존할 경우 탄소 비용이 연간 수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러한 환경·에너지 압박은 전력 공기업에도 직접적인 부담으로 이어졌다. 한국전력은 국제 연료비 급등분을 제때 반영하지 못해 최근 3년간 40조원대 적자를 기록했고, 이로 인해 전기요금 왜곡이 기업과 가계, 공기업 모두에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현행 전기요금은 기본요금, 전력량요금,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으로 구성되며 여기에 부가가치세와 전력산업기반기금이 붙는다. 결국 청구금액은 단순한 ‘전기 사용료’가 아니라 다양한 정책 목적과 세금이 뒤섞인 구조다.

특히 2021년부터 청구서에 별도 표기된 기후환경요금은 취지와 달리 논란을 낳았다. 본래는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제(RPS),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ETS), 석탄발전 감축 비용 등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2023년 기후환경요금 단가가 kWh당 9원으로 올라 4인 가구 월평균 2800원을 부담했다. 이는 TV 수신료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기업은 한전의 ‘녹색프리미엄’을 통해 kWh당 10원 내외로 재생에너지 사용 실적을 확보할 수 있어, 동기간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 가격(kWh당 70~80원)과 큰 격차를 보였다. 이 때문에 ‘추가성이 부족하다’ ‘소비자 부담이 기업 지원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전기요금 체계가 원가주의와 기후정책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있다는 데 있다. 원가 반영 지연으로 한전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기후환경요금은 투명성 논란에 휩싸였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정용보다 비싸지는 국제적으로 드문 현상이 나타나고, 철강·반도체 업종은 해외 이전을 고민한다. 반면 가정용 누진제는 여전히 서민 부담 논란을 낳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요금 인상이 아니라 구조적 해결이다. 첫째, 전기요금 인상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 추가 부담이 에너지 전환 투자와 탄소 감축으로 이어짐을 보여야 한다. 정당한 명분이 없다면 사회적 저항만 커질 뿐이다. 둘째, 기후환경요금은 사실상 목적세화해 특정 용도에만 쓰이도록 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투자, 탄소 감축 기술 지원 등 분명한 항목에만 쓰여야 신뢰가 회복된다. 셋째, 공정한 비용 분담 체계를 마련해 국민·기업·정부가 각자 몫을 투명하게 부담해야 한다. 특히 전력 다소비 업종에 대한 합리적 차등 부과 원칙이 필요하다. 넷째, 제도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녹색프리미엄의 구조적 한계를 개선해야 한다. 소비자 부담이 기업 지원으로 흐르지 않고, 진정한 전환 효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한국 제조업은 더 이상 과거처럼 전기요금의 저렴함에만 의존할 수 없다. 합리적 요금 체계와 투명한 부담 구조, 친환경 전환을 뒷받침하는 제도 개편이 함께 갖춰질 때 지속가능한 경쟁력이 가능하다. 에너지 전환은 불가피한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다. 전기요금 개혁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열쇠가 될 것이다.

김진욱 건국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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