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울산 남구 장생포 고래문화특구의 지정을 2028년까지 4년 연장했다. 2008년 7월, 국내 유일의 고래 테마 지역특구로 지정된 장생포는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바다여행선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며 ‘고래도시 울산’을 상징하는 공간이 돼왔다. 이번 연장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바다와 함께 살아온 울산의 기억을 이어가고, 문화와 관광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가는 또 한 번의 도약이다.
특구 지정 연장과 함께 ‘남부권 광역관광 개발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2027년까지 453억원을 투입해 3단계로 12개의 관광 거점을 확충하고, 2개의 맞춤형 관광 진흥 사업을 전개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첫 단계로 웨일즈판타지움 옥상 공중그네, 체험시설 ‘코스터카트’, 해군 숙소 리모델링 숙박공간 ‘고래잠’, 복합문화공간 ‘장생 아트플렉스’, 공중보행교 ‘고래등길’ 등이 이미 진행 중이다. 주민들의 추억이 깃든 죽도는 전시공간, 카페, 전망대, 순환산책로를 갖춘 복합문화섬으로 탈바꿈하고, SK 저유탱크 외벽에 설치된 대형 미디어 파사드 ‘장생포 라이트’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장생포는 오늘의 관광지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 뿌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7월, 울산의 반구천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산’를 아우르는 이 유산은, 바위 위에 새겨진 선사인들의 삶과 예술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기록이다.
특히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장면이 묘사돼 있다. 높이 4.5m, 너비 8m의 바위에 수백 점의 동물과 사냥 장면이 새겨져 있으며, 이는 울산이 인류 해양문화의 중요한 발상지임을 웅변한다.
선사시대의 고래잡이는 근대 상업포경 시기를 거쳐 장생포의 주력 산업으로 이어졌다. 거친 파도와 계절의 변화를 이겨내며 고래를 쫓던 사람들의 삶은, 경제 활동을 넘어 울산의 정체성과 문화가 됐다. 상업포경이 전면 금지된 이후에도 고래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관광, 교육, 예술의 영역에서 새롭게 옷을 갈아입으며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고래문화특구 지정 연장과 반구천 암각화 세계유산 등재는, 같은 뿌리에서 돋아난 두 줄기의 나무와 같다. 하나는 과거를 현대적으로 계승·발전시키는 토대이고, 다른 하나는 그 전통이 세계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두 사건은 과거와 현재가 맞물려 울산의 미래를 그려내는 장면이며, 문화유산이 단순한 보존을 넘어 도시의 활력을 새롭게 불어넣을 수 있음을 증명한다.
울산이 ‘고래의 도시’를 넘어 ‘문화의 도시’로 도약하려면 행정과 전문가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축제와 전시, 공연, 관광 프로그램 속에 지역 주민이 기획자이자 운영자, 그리고 이야기꾼으로 참여해야 한다. 상인들은 지역의 색을 담은 상품과 먹거리를 만들고, 청년들은 새로운 관광 콘텐츠를 기획하며, 어르신들은 장생포의 옛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 학교와 마을 단위에서 고래문화와 지역 역사를 배우고 체험하는 기회를 넓혀 세대가 서로의 기억을 나누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반구천의 바위에 새겨진 고래사냥 그림은 6000년 전 사람들의 꿈과 생존, 바다에 대한 경외를 전한다. 그들은 파도와 바람을 이겨내며 고래를 향한 도전과 감사를 바위 위에 새겼다. 오늘날 장생포 사람들도 여전히 같은 바다를 바라본다. 고래 대신 관광객을 맞이하고, 배 대신 축제와 문화 프로그램을 띄우지만,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옛사람이 바위에 새긴 그림이 그들의 삶을 기록했듯, 오늘 우리가 만드는 축제와 거리의 풍경도 언젠가 미래 세대가 기억할 울산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열정과 합쳐질 때, 울산은 매일이 축제인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장생포 고래문화특구와 반구천 암각화, 이 두 날개가 울산을 먼 바다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오르게 할 것이다.
방인섭 울산시의회 예산결산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