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만의 사회와 문화 (69)]제4차 산업혁명시대, 전문용어 남용문제와 대응
상태바
[한규만의 사회와 문화 (69)]제4차 산업혁명시대, 전문용어 남용문제와 대응
  • 경상일보
  • 승인 2025.09.03 0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 영어영문학

요즈음 어디를 가나 ‘AI’ 또는 ‘인공지능’에 관심이 넘쳐난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접어들면서 각종 전문용어와 기술용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네이버 AI 브리핑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로봇, 3D 프린팅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와 사회 전반에 융합돼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의미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 외에도 자주 언급되는 용어는 ‘메타버스, 클라우드 컴퓨팅, 블록체인, VR/AR’ 등이다. 온통 영어거나 영어를 한국어로 발음표기한 어휘들이다. 많은 국민들이 새로운 기술용어에 당황하고 영어표현에 위축된다. 기술용어라 해 직업 전문가들만 알아들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다수 국민과 소통해야 하고 접근 가능해야 나라가 발전한다.

원어와 축약어를 사용하는 것이 동종 직업인들끼리 유대감과 은어 효과는 누릴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영어와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은 용어에서부터 이질감을 느끼고 두려움이 앞서게 된다. 난해한 외국어 용어는 대중들로 하여금 디지털 장치와 서비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돼, 소위 ‘디지털 문맹’이 대량으로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상황에서도 일부 시민은 사실상 디지털 문맹이 돼 등본신청, 음식 주문하기, 인터넷 예약 등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직무 수행과 취업기회에서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 기술발전과 혁명도 좋지만, 궁극적으로 국민전체가 행복한 시대로 나아가려면 여러 보완대책이 필요하다. 지금껏 제시된 대책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교육과 홍보 강화,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제공, 다양한 디지털 환경 경험 등이다.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용어를 정확히 신속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 번역작업이 정부와 업계 차원에서 시도돼야 한다. 웹페이지나 홈페이지라는 말 대신에 ‘누리집’이라는 좋은 번역어가 정착돼가고 있다. 기술용어에서 외계어 같은 메타버스 대신 ‘가상우주’도 좋은 번역 사례이다. 관련 용어인 Augmented Reality와 Lifelogging을 ‘증강현실’과 ‘일상기록’으로 말한다면 언어 접근성은 상당히 높아진다. 또한 Mirror Worlds와 Virtual Worlds를 ‘거울세계’와 ‘가상세계’로 말한다면 그나마 이해도가 높아진다.

위에 언급한 디지털 격차해소를 위한 기존 대책들의 문제점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정책들이고, 대중이 무지해 문제라는 인식이 은연중 깔려 있다. 경남일보에 따르면 어느 도시의 공공기관 사업장 명칭에 ‘테크노파크, 바이오산업연구원, 하이브리드부품연구원, 그린카부품진흥원’ 등으로 외국어가 우리말처럼 공식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다른 도시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라 딱히 번역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있기는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다. 기업경영 측면에서 보자면 ‘소비자가 만족할 때까지’라는 서비스 정신이 부족해 보인다. 우선 정부와 업계 차원의 기술용어의 자국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외국어로 된 전문용어를 자국어로 번역해야겠다는 정부와 업계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의 ‘번역청’에 해당하는 정부 차원의 태도 변화도 필요하다. 조선시대에도 ‘역관’이라는 공무원이 있었다.

한편, 이에 대한 반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광근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연구자가 어렵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최무영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전문가 사회에 좀 있어 보이려면 영어를 써야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존재한다”고 잘못된 현실을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자신들끼리 소통하는 일과는 별개로 신문방송 등 언론과 대중들에게 접근할 때에 평범한 시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가 조선시대 ‘세종’을 ‘대왕’으로 추앙하는 것은 그가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고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애민정신과 민본주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 영어영문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부동산 시장 훈풍분다
  • 2025을지훈련…연습도 실전처럼
  • 국정기획위원회,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 어떤 내용 담았나
  • “울산부유식해상풍력 공적 투자 확대를”
  • [현장&]울산 곳곳에 길고양이 급식소 ‘캣맘 갈등’ 지속
  • 한미 조선협력 ‘마스가 프로젝트’ 울산서 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