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인 고리1호기의 해체가 본격화했다. 지난 6월 원자력안전위원회 승인을 거쳐 한수원의 해체 절차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시설 철거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2030년까지 5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원전 해체 시장에 우리 기술과 기업이 도전장을 내미는 첫 시험대이자 교두보다. 따라서 원전해체 작업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 공정성과 신뢰가 담보돼야 한다.
고리1호기의 해체 사업은 출발부터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한수원은 최근 진행한 고리1호기 비관리구역 해체공사 입찰에서 부산 기업은 실적요건을 면제한 반면, 울산 기업은 배제했다. 행정구역상 주소지가 부산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원전 해체의 본질과 무관한 행정 편의적 해석일 뿐 아니라, 인접 지역의 실질적 피해와 이해관계를 외면한 불합리한 결정이다.
울산은 고리 원전과 행정경계를 맞대고 있다.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에 포함된 울산 시민만 86만8000여명에 이른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12기와 건설 중인 새울 3·4호기를 품은 울산은 명실상부 원자력 산업의 핵심 집적지다. 제염·방사선 관리 등 원전 해체 전문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만 50여곳에 달한다.
울산과 부산은 한국원자력환경복원연구원 유치 과정에서 수백억원을 부담하며, 긴밀하게 협력해 왔다. 그런데도, 고리 1호기 해체 사업에서 울산을 배제한 것은 향후 두 도시 간의 신뢰를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불공정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행정경계만 기준으로 입찰 자격을 차등 적용한다면 앞으로 다른 원전 해체나 신규 원자력 사업에서도 유사한 논란이 반복될 것이다. 지역사회는 원전 위험만 감수하고, 지역 기업은 기회를 잃는 ‘전력 식민지’라는 자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와 한수원은 지금이라도 정책적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고리 원전에 인접한 울산까지 실적요건 완화 기준을 확대하고, 고난이도 공정에서는 지역 기업과의 공동수급 체계를 의무화해야 한다. 기술 기업 역량을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한수원이 직접 매칭 프로그램을 운영해 하도급·공동수급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고리1호기 해체사업은 대한민국이 글로벌 원전 해체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이 중요한 기회에서 원전도시 울산을 배제하는 것은 국가 전략의 실패다. 원전 해체의 성패는 기술력만이 아니라 공정성과 신뢰에서 갈린다는 점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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