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건축문화제 릴레이 기고(2)]공간에 스며든 삶의 풍경, 그리고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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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건축문화제 릴레이 기고(2)]공간에 스며든 삶의 풍경, 그리고 건축
  • 경상일보
  • 승인 2025.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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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도형 도형건축사사무소 건축사

어릴 적 살던 집이나 몇 해 전 살던 동네를 떠올리면, 먼저 떠오르는건 건물의 외벽재료나 창문의 위치가 아니다. 거실에 둘러앉아 먹던 저녁 식사시간, 동네에서 친구들과 딱지치기를 하거나 뛰어놀던 골목, 부엌에서 어머니가 음식을 하시던 그 소리와 냄새 같은 것들이다.

기억 속 집은 평면도가 아니라 풍경이고 그 안에 깃든 감정이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건축을 이야기할 때 ‘도면’보다는 그 안에서 펼쳐지는 ‘풍경’ 그리고 ‘분위기’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타 지역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울산의 건축이란 그리고 그들이 기억하는 울산의 모습이란 대기업 공장과 연기나는 굴뚝 같은 것들이다. 울산은 그만큼 오랫동안 산업과 생산을 상징하는 도시였고 그 속에서 자란 필자 또한 ‘기능’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건축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건축은 물리적인 구조를 만드는 일이지만, 결국 그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이야기, 습관과 감정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건축은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공간이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무대이자 배경이다. “건축은 사람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이 뻔하면서도 계속 곱씹게 되는 건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일지도 모른다. 공간은 삶을 담고 삶은 곧 습관이 되고, 습관은 결국 문화가 된다. 그러니 건축은 단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품고 있는 어떤 ‘존재’인 셈이다.

올해로 제9회를 맞는 울산건축문화제가 ‘울산다움 그리고 다음’ 이라는 주제로 9월에 개최된다고 한다. 과연 울산다움 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생활하게 될 울산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울산은 1962년 특정 공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정부 주도 아래 자동차·조선·석유화학 산업을 중심으로 급격히 성장하며, 한국 최대의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해 도시 기반을 다졌다. 동해의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울산시는 1990년대 들어 인구 100만 명을 돌파하며 광역시로 승격되었다.

이처럼 산업구조의 변화는 울산 경제에 큰 혜택을 가져와 시민들의 생활 수준을 한층 윤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도시 인프라, 문화공간, 녹지공간 등은 이에 걸맞게 따라가지 못했다. 경제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효율성만을 중시한 주거공간과 산업공간이 도시를 가득 채우며, 사람들이 숨쉴 수 있는 여유 공간은 점차 사라졌다. 아름다운 해안선을 품었던 울산 앞바다는 대규모 무역항과 화학공업단지로 변모해 옛 모습을 거의 잃고 말았다.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울산의 도시 풍경은 이제야 주변을 돌아보며 숨 고르기를 시작한 듯하다.

최근 들어 울산의 풍경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회색빛 구조물 대신 사람의 숨결이 머무는 공간들이 도시의 표정을 바꾸어 가고 있다. 곳곳에 크고 작은 공원이 조성되고, 태화강변에는 국가정원이 자리 잡았다. 그 사이사이를 잇는 길고 짧은 산책길을 걷다 보면,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는 카페와 도서관이 생겨나고, 공연·전시·강연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도 하나둘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공업도시라는 이미지를 지녀온 울산은 이제 그 산업적 혜택을 바탕으로 도시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고 있다. 2028년 국제정원박람회 유치와 더불어 국제적 수준의 공연장 건립을 추진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도시와 건축이 있다. 건축은 때로는 조용히 그림자처럼, 때로는 숨결처럼 우리 곁에 머문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를 말해준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도 또 하나의 공간을 생각한다. 이번 울산건축문화제를 통해 더 많은 시민들이 ‘건축이 곧 나의 삶’이라는 것을 느끼고, 우리 도시 울산이 더 따뜻하고 사람다운 공간으로 채워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도형 도형건축사사무소 건축사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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