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는 최근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웃음 뒤에는 씁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15년간 전업주부로 살다 어렵게 사회에 복귀해 전문직장인으로 출퇴근하던 행복도 잠시, 시어머니의 치매와 친정아버지의 뇌졸중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경증일 때에는 주간 보호센터에 다닐 수 있어 큰 도움이 되었었다. 상태가 악화하여 방문간병인이 필요했다. 하루 몇 시간뿐인 방문 요양 서비스로는 역부족이었다. 요양병원은 양가 부모가 완강히 거부했다. 전문간병인을 쓰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직접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 부모를 돌보게 되었다.
이 사례는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돌봄 현실을 압축해 보여준다. 우리는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나라이다. 자녀와 분리된 가구가 늘어나면서 노인의 돌봄 수요는 급격히 커졌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노인의 절반이 자녀와 함께 살았다. 지금은 열 명 중 두 명에 불과하다. 일본과 대만보다 더 가파른 변화다. 자녀와 있어도 24시간 돌볼 수는 없다.
건강보험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요양보호사 부족은 이미 시작되었다. 올해부터 3700여명이 모자라며, 2028년에는 11만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예상한다. 1차 베이비붐 세대가 75세 이상 후기 고령층에 진입하는 2030년 이후에는 돌봄 공백이 더 심각해질 것이다. 2050년에는 그 규모가 무려 100만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숫자만으로도 이 위기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한 해법 중 하나로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 대책을 내놓았다. 법무부와 보건복지부는 국내 24개 대학을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 대학’으로 지정했고, 울산에서는 울산과학대학이 지정되었다. 한국어 교육, 노인 돌봄 전문지식과 실무 교육, 문화 적응 프로그램으로 교육해서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인력을 배출하겠다는 구상이다. 단순한 인력 수혈이 아니라 체계적 양성으로 연결하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돌봄은 단순 노동이 아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돌봄이야말로 가장 밀착된 인간관계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치매 어르신의 경우, 새로운 이를 집 안으로 들이는 것 자체가 큰 불안과 저항을 유발한다. 한 어머니는 처음 방문한 요양보호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내쳤다. 수십년간 지켜온 생활의 울타리에 이방인을 들이는 것은 온전치 않은 노인에게 더욱 어려운 일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이라면 저항감은 배가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다. 첫째, 충분한 한국어 소통 능력이다. 돌봄은 의학적 지식보다 정서적 교감에서 시작된다. 둘째, 문화 적응과 심성 교육이다. 단순히 간병 기술을 넘어, ‘부모를 대하듯’ 하는 태도가 교육 과정에 포함되어야 한다. 셋째, 처우 개선이다. 외국인 요양보호사를 값싼 노동력으로만 본다면 오래 버틸 수 없다. 안정된 생활, 노동권 보장, 사회적 존중이 따라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식당, 공장, 농촌에서 외국인 근로자는 생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요양보호사는 더 민감한 일이다. 우리의 안방을 열어 노후의 삶을 맡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단순히 인력난을 메우는 정책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다양성과 연대를 어떻게 품어낼지를 시험하는 사회적 실험대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돌봄의 공백이 가족의 정신적 붕괴로 이어지는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다. 간병 부담은 우울과 불안을 키우고, 가족관계마저 파괴한다. 돌봄 문제는 개인의 희생이나 가정의 문제로만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사회 전체가 나누어야 할 공공의 과제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외국인 요양보호사 제도는 우리에게 인력 보충책일 뿐 아니라, 다문화 이웃을 진정한 가족으로 맞이할 기회가 될 것이다. 노인 돌봄은 모든 이의 인권이고 나라가 부양해야 하는 책임 비용이다. 그리고, 사회의 품격을 결정하는 가치이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