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화학으로 이루어진 세상, 그리고 울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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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화학으로 이루어진 세상, 그리고 울산 이야기
  • 경상일보
  • 승인 2025.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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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수진 한국폴리텍대학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 교수·운영지원처장

숨 쉬는 공기, 매일 마시는 물, 그리고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까지, 이 모든 것은 화학의 산물이다. 화학은 단순히 실험실의 복잡한 방정식이 아니라,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우리는 화학이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빵이 구워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소한 냄새는 ‘마이야르 반응’이라는 화학 반응이다. 이 반응이 빵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풍미를 더한다. 커피의 쌉쌀한 맛과 풍부한 향 또한 수백 가지의 화합물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리고 샴푸나 비누의 주성분인 계면활성제는 물과 기름이 잘 섞이도록 도와줘서 피부의 노폐물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화장품이 균일한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

이 외에도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현대 문명은 ‘고분자 화학’이 만들어낸 플라스틱, 고무, 합성섬유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이처럼 화학은 우리의 삶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까운 친구이다.

특히, 산업도시 울산에서는 화학의 존재를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울산은 국가기간산업인 석유화학산업의 중심지이다. 정유공장의 파이프라인을 따라 흐르는 원유는 복잡한 ‘분별 증류’ 과정을 거쳐 다양한 화학제품의 원료로 변모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휘발유, 경유 같은 에너지원뿐만 아니라, 나프타와 같은 기초 화학 원료를 얻게 된다. 나프타는 다시 화학공장으로 옮겨져 ‘화학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으로 전환된다. 이 기초 원료들은 다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플라스틱 용기, 합성 섬유, 고기능성 합성 고무 등으로 재탄생하며, 울산의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의 부품과 선박 건조에 사용되는 재료가 된다.

하지만 화학이 항상 이로운 물질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해로운 결과를 낳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가습기 살균제이다. 2023년 말까지 공식적으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1843명이 사망하고 6048명의 피해자가 발생하여 현재까지도 그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1997년, 필자는 두 살이 된 큰아들과 갓 태어난 작은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겨울철 건조한 실내 환경 때문에 가열식 가습기를 사용했는데 전기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 걱정이었다. 이때 가습기 살균제가 시장에 나왔고, 사용하기 간편하고 전기요금 걱정도 없다는 점 때문에 필자처럼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편리함에 필자도 서둘러 구매하고 전공자의 습관처럼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을 살펴보았다. 당시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아 직장에서 사용하는 유료 데이더베이스인 STN(Scientific & Technical Information Network)으로 자료를 검색한 결과, 폴리헥사메틸렌 구아니딘(PHMG) 성분이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아내와 주변 지인들에게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중단하고 즉시 폐기할 것을 강력하게 권유했다. 어떤 이들은 제조사가 적절한 용량으로 만들어 허가받아 판매하는 것을 필자가 유난을 떤다고 했다. 하지만 필자의 경고 덕분에 두 아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독성물질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과학적 지식과 올바른 판단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중요한 방패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보다 많은 곳에 알리지 못한 부분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화학은 우리의 일상과 산업, 그리고 도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울산은 화학이 가져온 풍요와 도전, 그리고 미래를 가장 잘 보여주는 도시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 병, 자동차 타이어, 도시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모두 화학의 결과물이다. 화학에 대한 이해득실을 따지기 이전에 이미 우리의 삶은 화학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화학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비추는 등대와 같다. 우리는 그 빛을 올바른 방향으로 활용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구수진 한국폴리텍대학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 교수·운영지원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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