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발표된 통계는 울산의 산업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지난 5년간 전국 국가산단에서 발생한 중대사고는 110건, 이로 인해 9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 울산에서만 24명이 사망했는데, 미포산단 14명, 온산산단 10명으로 단일 지역에서 전체의 4분의 1이 넘는 인명 피해가 집중된 것이다. 올해 2분기만 보더라도 울산의 산재 사망자는 13명으로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했다.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산업도시 울산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뚜렷한 경고음이다.
울산의 두 핵심 산단, 미포와 온산은 업종 특성상 위험이 늘 상존한다. 미포산단은 조선·철강 중심으로 고소작업과 중량물 취급 등 위험이 상존한다. 추락사고는 여전히 현장을 위협하며, 안전고리 없이 수십미터 높이에서 작업하다 추락하는 참사가 반복된다. 중량물 장비 사고 또한 발생하면 피해 강도가 치명적이다. 온산산단은 정유·석유화학 공장이 밀집한 곳으로, 폭발성 물질과 독성 화학물질이 항상 존재한다. 올해 초 발생한 유류저장탱크 폭발사고는 정전기 제거와 유증기 관리 같은 기본 안전조치가 소홀했던 결과였다.
더 큰 문제는 이 사고들이 새로운 유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추락, 협착, 폭발과 같은 전형적인 재해가 수십 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본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안전난간, 안전대, 작업발판은 안전의 최소 조건이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속도와 비용이 안전을 밀어낸다. 솜방망이 처벌도 구조적 원인이다. 해외에서는 수십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수백만원 벌금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대형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제도·기술·훈련의 삼박자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정유·화학 플랜트 같은 초고위험 사업장에는 전담기관을 두고, IoT·AI 기반의 스마트 감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설비 노후도 및 위험도에 따라 설비 점검 주기를 달리하는 ‘위험기반 유지보수(RBI)’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시나리오 기반 모의훈련을 정례화해야 한다. 대형사고는 우연히 막히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준비로 예방되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들의 대응 태도도 문제다. 실질적 안전조치보다는 보고서 작성과 문서화에 치중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특히 중소 협력업체는 인력과 자금이 부족해 안전투자가 어렵다. 원청의 실질적 지원 없이 법 준수만 강요된다면 안전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법의 본질은 처벌이 아니라 현장의 안전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해외 주요국들은 안전문화를 사회적 가치로 끌어올려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냈다. 영국은 ‘안전은 법적 의무이자 윤리적 책임’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며, 기업 리더에게 직접 책임을 부과하고, 모든 근로자가 참여하는 ‘Safety Representative 제도’를 정착시켰다. 캐나다는 ‘내 권리는 안전할 권리’라는 구호 아래, 근로자가 위험을 감지하면 즉시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강력히 보장한다.
울산이 ‘죽음의 산단’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안전문화다. 기업은 안전을 비용이 아닌 투자이자 책임으로 인식해야 하고, 노동자는 수동적 지침 수용자가 아니라 위험 개선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정부는 산업도시 울산을 ‘국가 안전 모델 도시’로 지정하고, 안전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해 시민이 감시자로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 규정한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새겨야 할 경고다. 울산은 더 이상 산업화의 영광만으로 평가받을 수 없다. 생명을 존중하는 안전의 롤모델 도시로 거듭날 때만 산업수도로서의 명예와 미래를 지킬 수 있다. 김두겸 울산시장이 최근 긴급안전점검회의에서 울산을 ‘중대재해 없는 안전제일도시’로 만들겠다고 한 것은 의미 있는 움직임이다.
생명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울산이 이 단순하지만 무거운 진리를 실천할 때, 비로소 ‘죽음의 산단’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한민국 산업안전의 모범 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정안태 울산안전(주) 대표이사 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