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태의 인생수업(12)]멈춘 듯한 시간, 다시 나아가기 위한 숨 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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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태의 인생수업(12)]멈춘 듯한 시간, 다시 나아가기 위한 숨 고르기
  • 경상일보
  • 승인 2025.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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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

삶에는 누구에게나 시간이 멈춘 듯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분주했던 일상이 갑자기 느슨해지고, 익숙한 리듬이 끊어질 때, 우리는 불안에 휩싸인다. 그러나 철학은 우리에게 말한다. 멈춤은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이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인간은 끊임없이 ‘존재의 물음’과 마주하며, 그 질문은 종종 일상의 공백 속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퇴직 이후의 삶은 이 멈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더 이상 사회가 정해준 일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 자유로움은 동시에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이 강조했듯, 인간은 의미를 찾는 순간 비로소 고통도, 공백도 견딜 수 있다. 나는 이 시간을 독서와 글쓰기로 채운다. 매일 써 내려가는 안전칼럼은 단순한 직업적 습관이 아니라, 사회에 안전문화를 심는 작은 씨앗이며, 나 자신의 경험을 세상과 나누는 삶의 의미다.

노년학은 인간의 발달을 직선이 아닌 순환으로 본다. 청춘의 빠른 속도, 중년의 치열함을 지나 노년은 ‘쉼’이라는 새로운 리듬을 요구한다. 나무가 겨울을 견디며 뿌리를 깊이 내리고, 봄에 새싹을 틔우듯이, 노년의 쉼은 삶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다. 심리학적으로도 휴식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필수 과정이다. 쉼은 뇌와 몸, 그리고 마음의 균형을 다시 맞추는 기술이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숨 고르기다.

인문학은 멈춤의 가치를 ‘성찰’이라 부른다. 소크라테스는 “성찰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다. 쉼의 순간에 우리는 자주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질문은 불안을 동반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더 깊은 자아로 이끈다. 멈춤은 곧 자신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실천은 작을수록 힘이 있다. 아침에 몸을 가볍게 움직이고, 책의 한 장을 넘기고, 짧은 글을 쓰는 일. 이 소소한 행위들은 눈에 띄지 않지만 내면을 차분하게 단단히 만든다. 노년학적 관점에서 이는 자율성과 자기 효능감을 지켜주는 가장 중요한 습관이다. 생산성 없는 시간도 삶의 일부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회복을 경험한다.

결국 멈춤은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바람을 잔뜩 머금은 나무가 한 계절을 쉬며 새 잎을 틔우듯, 인간도 쉼을 통해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자책으로 채우지 않고, 자기 자신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태도다.

삶의 질은 속도가 아니라 리듬에서 비롯된다. 멈춤과 전진, 쉼과 몰입이 교차하며 삶은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철학은 그것을 ‘순환’이라 부르고, 심리학은 ‘회복’이라 말하며, 노년학은 ‘지혜의 완성’이라 가르친다.

멈춘 듯한 지금 이 순간조차, 어쩌면 인생은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우리를 성장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쉼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잘 쉬는 연습. 그것이야말로 인생 후반전을 품격 있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큰 지혜다.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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