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개봉한 한국 영화 ‘엑시트’는 코미디와 재난을 결합한 이색적인 소재로 많은 관객의 호응을 얻은 작품이다. 배우 조정석과 윤아가 주연을 맡아 웃음과 긴장을 동시에 선사하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단순한 오락을 넘어 안전문화를 배우는 관점에서도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영화는 갑작스럽게 도시 한복판에 유독가스가 퍼지며 발생한 재난 상황을 그리는데, 그 속에서 평범한 인물들이 생존을 위해 고분분투하는 과정은 오늘날 우리 사회와 산업현장이 반드시 되새겨야 할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평소에는 특별히 주목받지 못하던 존재였지만, 위기 상황이 닥치자 자신이 가진 능력과 경험을 발휘해 가족과 시민들을 지켜낸다. 특히 주인공 용남(조정석)이 대학 시절 산악동아리 활동을 통해 익힌 암벽등반 실력은 재난 상황에서 큰 힘이 된다. 그는 옥상에서 옥상으로 건너뛰며 가족을 이끌고, 추락 위험이 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생존의 길을 찾아 나선다. 이는 곧 산업현장 고소 작업에서도 통하는 메시지를 준다. 안전대를 착용하고, 신체 능력을 유지하며, 기술 훈련을 꾸준히 해 두는 것이 결국은 생명을 지키는 열쇠라는 점이다.
또한 영화는 ‘개인 보호 장비(PPE)’의 중요성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유독가스가 퍼지는 순간, 주인공들은 방독면을 찾아 착용하고, 몸을 비닐과 방호복으로 감싸며, 장갑을 끼고 호흡기와 피부를 보호한다. 이는 화학물질, 연기, 유독가스 등 각종 유해물질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는 기본이자 최후의 보루임을 강조한다. 산업현장에서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숙지, 위험물 관리, 정기적인 안전교육과 훈련이 결코 형식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 속 장면은 우리가 평소 당연시하는 장비와 절차가 실제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바로 의사소통과 협력이다. 주인공들이 휴대전화를 통해 구조 신호를 보내고, 구조대와 박자를 맞추며 연락을 주고받는 장면은 위기 대응에서 신속한 정보 공유와 체계적인 의사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산업재해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상연락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상황 전파가 늦어진다면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 따라서 기업과 사회는 재난 시나리오에 따른 비상대응 체계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철저히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 ‘엑시트’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만, 우리 사회의 산업현장은 여전히 하루가 멀다 하고 중대재해 소식이 들려온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이 높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아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사고 발생 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하는 ‘직보(直報)’ 지시를 내린 것 역시, 안전 문제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산업안전을 기초부터 다시 세워야 할 시기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위기 속에서 발휘한 기지와 협력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 산업안전 역시 꾸준한 습관과 체계적인 훈련에서 비롯된다. 안전수칙의 생활화, 위험물 관리와 교육, 장비 점검과 활용, 정기적인 훈련, 협력과 소통 체계 확립이 제대로 뿌리내릴 때, 우리는 영화처럼 위기 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 나아가 그것이 곧 무재해 사회를 향한 길이다.
영화 ‘엑시트’는 단순한 오락작품이 아니라, 재난 대응과 안전문화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관객에게 웃음과 긴장을 안겨주면서도, 안전의 본질적 가치를 성찰하게 만든다. 현실 속 우리는 더 이상 영화와 같은 해피엔딩을 꿈꾸기만 해서는 안 된다. 산업 현장의 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정부와 기업, 노동자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공동의 책무다. 늦지 않았다. 지금 이 시기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산업안전에도 반드시 해피엔딩은 찾아올 것이다.
이정일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AI산업안전시스템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