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도시의 창의적 인프라로서 디자인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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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도시의 창의적 인프라로서 디자인과 예술
  • 경상일보
  • 승인 2025.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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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백 울산대학교 교수 울산공간디자인협회장

한적한 국도를 다니다 보면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는 산골 마을 구석구석까지 정돈된 도로와 가로등, 체육공원과 복지시설을 마주하게 된다. 지역 주민들의 기본적인 생활과 공동체 활동을 위한 인프라(Infrastructure, 사회적기반)들이다. 일반적으로 인프라는 사회와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받쳐주는 기본적인 시설이나 체계를 말한다. 도로, 철도, 항만, 전기, 수도 같은 물리적인 시설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법률, 행정과 같은 공공서비스 체계도 인프라에 포함된다. 인프라는 경제 활동과 시민의 일상을 지탱하는 골격과 같은 역할을 하며, 수준 높은 인프라는 지역 발전과 국민 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즉, 인프라는 사회와 경제가 지속 가능하도록 든든하게 받쳐주는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인프라는 개인이나 기업이 만들기 어렵고, 국가나 지자체가 주도하여 구축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생산 기반’ 또는 ‘사회간접자본’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유형의 물리적 인프라와 마찬가지로, 디자인과 예술은 도시의 지속 가능성과 인간적인 도시를 위해 필수적인 창의적 인프라다. 하지만, 최근 울산의 창의적 인프라는 큰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다. 입시자원 감소와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인해 지역의 디자인, 예술 계열 학과들이 축소되거나 소멸하여 가는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이는 창의적 인프라를 약화해서 도시의 매력과 경쟁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많은 울산 시민이 수준 높은 문화 경험을 위해 부산이나 서울을 찾고, 지역 청년들 역시 다양한 문화적 기회를 찾아 타 도시로 향하는 것은 울산의 창의적 인프라가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부산, 대구와 같은 이웃 도시에는 다수의 대학교에서 다양한 디자인, 예술 관련 학과가 운영되고 전문인들이 양성되며, 그 지역을 근거로 활발한 창의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서, 일부 학과의 존폐가 도시의 창의적 인프라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울산은 이러한 인력 양성 과정이 매우 제한적이라서, 관련 프로그램의 존폐가 곧바로 도시의 창의적 인프라 붕괴로 직결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울산은 다른 도시와 달리 디자인과 예술 분야 인재 양성을 도시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발전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도시의 문화적 토대와 미래 경쟁력 확보에 필수적 요건이다. 디자인과 예술을 중심으로 한 창의적 인프라는 층층이 쌓인 시간의 켜 위에서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는 특성을 유념해야 한다.

최근 울산시는 AI 수도를 표방하고 새로운 도시 성장의 계기로 삼고 있다. 디지털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고, 패턴을 인식하며 예측하는 인공지능과 달리, 아날로그와 직관을 바탕으로 문화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지닌 고유 영역이다. 이러한 능력은 디자인과 예술을 통해서 길러지는 창의성과 융합적 사고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AI 산업 수도’ 울산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예술이 함께 성장하는 균형 잡힌 도시가 되어야 한다.

특별히, 디자인과 예술은 단순한 장식이나 멋이 아니라 기능과 감성, 기술과 인간을 잇는 창조적 연결고리이며, 산업 혁신과 도시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분야다. 1980년대 영국이 제조업 쇠퇴로 경제 위기를 겪던 시기, 정부 차원에서 디자인과 창의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여 세계적인 창조경제 강국으로 도약한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리가 즐겨 찾는 도시공간, 미술관, 공연장과 같은 시설들은 시민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필수 공간이지만, 이들 공간을 특별한 가치와 관점으로 새롭게 채우는 것은 체계적으로 교육되고 양성된 디자인, 예술 전문가들과 같은 창의적 인재들이다.

도시의 미래는 혁신적인 산업과 디자인, 예술의 창의적 융합에 달려 있다. 이는 시민들이 ‘살고 싶고 머물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디자인과 예술을 울산의 미래를 위한 창의적 인프라로 인식하고 체계적인 환경조성과 인재 육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규백 울산대학교 교수 울산공간디자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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