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회계의 문법을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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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회계의 문법을 하나로
  • 경상일보
  • 승인 2025.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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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욱 건국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부원장

기업의 회계는 지난 20여년간 꾸준히 발전해 왔다. 외부감사법 강화, 표준감사시간제 도입, 감사인 독립성 확보, 내부회계관리제도의 고도화 등으로 기업 회계투명성은 과거보다 크게 향상됐다. 이는 제도의 성과이자 시장 신뢰를 중시하는 기업문화의 진화다.

이제 그 성과를 사회 전체로 확산할 때다. 공익법인, 사립학교, 의료기관, 지방자치단체 등 비영리·공공부문은 여전히 서로 다른 회계기준을 적용받는다. 국민의 세금과 기부금이 투입되는 영역임에도 회계의 문법은 제각각이고 책임 구조도 불분명하다.

회계의 단절은 신뢰의 단절이다. 회계정보가 통일되지 않으면 국민은 예산과 기부금이 어디로 쓰였는지 알기 어렵다. 정부 부처, 지자체, 공공기관이 다른 기준으로 회계를 처리한다면 그 결과는 숫자의 합이 아니라 불신의 합이 된다. 회계는 단순한 장부기술이 아니라 사회계약의 기록이다.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논의가 바로 회계기본법이다.

회계기본법은 조직의 형태나 소유구조와 관계없이 회계정보의 생산·공시·감사에 적용될 공통 원칙을 제시하는 기본법이다. 지금까지의 회계제도가 기업 중심이었다면, 이 법은 ‘국가의 회계언어’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다. 공공과 민간,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를 넘어 동일한 기준 위에서 회계정보를 작성하도록 하는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다.

현재 회계제도는 부처별 법령에 따라 달리 운영된다. K-IFRS 또는 일반기업회계기준을 적용하는 기업과 달리, 공익법인·학교·의료기관·공공기관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사립학교법, 의료법, 공공기관운영법 등에 따라 각각 다른 회계규칙을 따른다. 같은 재무제표라도 기준이 달라 비교가 어렵고 회계정보의 품질도 일정하지 않다. 회계기본법이 제정되면 각 기관은 하나의 원칙 아래 재무정보를 작성하고, 국민의 세금·기부금·출연금 사용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정부·기업·비영리단체 모두가 공통된 회계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

이 법이 만들어낼 변화는 단순한 회계의 표준화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신뢰 인프라 구축이다. 국민은 더 쉽게 감독하고, 기관은 투명한 회계로 책임을 증명할 수 있다. 투명성은 행정의 의무이자 민주주의의 실천이며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다.

IMF와 OECD는 회계투명성을 국가 신용도 평가의 핵심 지표로 본다. 사회 전반의 회계정보 신뢰도가 높아질수록 정부 재정의 건전성, 기업의 자본조달, 국가위험 프리미엄까지 개선된다. 회계기본법은 단순한 제도 개편이 아니라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신뢰 개혁이다.

또한 이 법은 행정의 중복을 줄이는 실용적 기능도 가진다. 부처마다 다른 회계기준으로 인해 동일한 사업이라도 회계처리 방식이 달라 비교와 통합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 회계기본법은 이런 기준 충돌을 해소하고 부처 간 협업을 가능하게 한다. 행정의 효율성은 높아지고 국민의 감시비용은 줄어든다.

입법 과정의 현실적 과제도 있다. 적용 범위와 예외 규정, 소규모 단체의 부담 등은 세심히 설계해야 한다. 다수의 비영리단체와 사회복지법인은 이미 공익법인회계기준상 외부감사·공시 의무를 부담하고 있어 이중규제의 우려가 있다. 따라서 회계기본법은 모든 조직을 한꺼번에 규율하기보다 세금이 투입되는 기관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법의 목적은 절차가 아니라 원칙에 둬야 한다. 구체적 세부 기준은 시행령으로 위임하되, 법률은 회계의 본질과 투명성, 독립성을 천명해야 한다. 원칙이 분명할수록 행정은 민첩해지고 제도는 지속된다.

회계기본법이 제정되더라도 실행 기반이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실효성은 제한적이다. 이를 위해 기존 회계감독체계 간 긴밀한 연계와 협력이 필요하다. 부처 간 정보 공유를 강화하고, 회계기준 해석의 일관성을 확보하며 감사 품질관리 기준을 통일해 감독의 전문성과 연속성을 높여야 한다.

회계기본법은 사회 각 부문이 같은 언어로 말하게 하는 통합의 법이며, 신뢰와 투명성의 질서를 세우는 사회계약의 법이다. 투명한 회계는 기업의 언어이자 국가의 언어다. 이제 대한민국은 회계의 문법을 통일하고 그 위에 신뢰를 세워야 한다. 법이 신뢰를 세우고, 신뢰가 국가를 세운다. 지금이 바로 그 토대를 세울 때다.

김진욱 건국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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