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에너지특구 지정이 몇 달째 미뤄지며, 울산의 에너지 자립 전략이 공전하고 있다. 산업부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로의 업무 이관과 에너지위원회 구성 지연이 겹치면서 심의조차 열리지 못한 채, 울산의 ‘전력 자립 모델’은 서류 속에 멈춰 서 있다.
울산시는 지난 5월 미포·온산국가산단을 중심으로 국내 1호 분산에너지특구 지정을 신청했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최종후보지로 선정했다. 그러나 정부 조직개편 논의가 본격화하며 일정이 멈췄다. 지난달 열린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위원회에서도 분산특구 지정 지연은 주요 성토 대상이었다. 울산시는 에너지위원회 조속 개최를 거듭 건의하고 있지만, 정부의 답변은 여전히 ‘검토 중’에 머물러 있다.
울산은 전력자급률 110%를 넘는 에너지 자립 도시다. 울산시는 이를 토대로 AI 데이터센터와 수소, 이차전지 등 에너지 다소비형 신산업 유치를 추진 중이며, 분산에너지특구 지정은 그 전략의 중심축이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시계는 여전히 멈춰 있다. 최근 기후부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 시점은 ‘2026년 이후’로 명시됐다. 이는 실제 시행이 아닌 ‘도입 방안 마련 시기’에 불과하다. 수도권보다 최대 20% 저렴한 전기료 혜택이 기대되는 울산으로선 투자 유치의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 수도권의 반발과 내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이 겹치면 제도 시행은 한없이 뒤로 밀릴 여지도 크다.
이런 불확실성은 산업 현장에서 곧바로 반영된다. 전력비는 제조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다. 울산이 생산한 전력을 지역 산업의 성장동력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기업은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타 지역이나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에너지 자립도시’라는 구호가 실효성을 잃는 순간이다.
분산에너지특구는 중앙집중형 전력체계에서 지역 자립형 구조로 전환하는 첫 단추이며, 탈탄소·디지털 전환 시대의 국가 경쟁력을 가늠하는 시험대다. 울산처럼 산업 구조가 에너지와 직결된 도시에 있어 특구 지정은 명예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정부는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분산특구 지정과 전기요금 차등제는 함께 추진돼야 한다. 하나만으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울산의 준비가 끝난 지금, 중앙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에너지 정책의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그 대가는 울산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이 함께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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