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울산 화학산업, AI 자율실험실로 미래 설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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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울산 화학산업, AI 자율실험실로 미래 설계하자
  • 경상일보
  • 승인 2025.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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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신 울산테크노파크 원장

울산은 대한민국의 산업 심장이다. 화학·자동차·조선이라는 세 축이 지역 경제를 떠받쳐 왔지만, 지금 화학산업은 ‘글로벌 공급 과잉’ ‘중국·중동의 거센 추격’ ‘탈탄소 규제 강화’라는 삼중고로 벼랑 끝에 서 있다. 지난해 울산 석유화학업계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사실상 바닥 수준이다. 과거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생존조차 장담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실은 단순한 산업 경기 침체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에너지 전환, 기술 패러다임 변화가 한꺼번에 몰아치는 격랑 속에서 울산 화학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구조적 위기다. 즉, 새로운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단기간의 회복은 가능할지언정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울산의 경제와 고용을 책임져온 화학산업이 흔들린다면, 이는 곧 지역사회의 존립과 국가 산업체계 전체에도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근본적인 혁신의 방향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울산은 과거에도 수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꿔왔다. 조선·자동차·화학이라는 주력산업 역시 한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기술 혁신을 통해 성장의 전기를 마련했던 역사적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울산은 위기를 발판 삼아 새로운 도약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은 기존 화학산업의 단순한 설비 경쟁이 아니라, 연구개발과 첨단 기술 융합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안에서 찾아야 한다.

해법은 분명하다. 범용 제품 중심 구조를 벗어나 고부가 화학소재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범용 제품을 주력으로 하는 대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최근 1~2%까지 떨어져 사실상 적자 위기에 내몰리고 있지만, 고기능성·첨단소재와 같은 고부가 분야는 평균 9~12%의 수익성을 기록한다. 울산이 살아남으려면 이 영역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러나 신소재 개발에는 4~6년, 수십억원이 필요한 만큼 중소·중견기업이 독자적으로 추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난제를 해결할 돌파구가 바로 ‘AI 자율실험실(Self-driving Lab)’이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가장 가능성 있는 합성 조건”을 제시하면, 로봇 실험 장비가 스스로 실험을 수행하고 결과를 다시 학습에 반영한다. 사람보다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수백 가지 실험을 단기간에 반복할 수 있어, 최적의 방법을 빠르게 찾아낸다. 실제로 미국 MIT 연구진은 이 체계를 활용해 촉매 신소재 개발 기간을 3~4년에서 1년 이내로 줄였다.

현재 울산 중소·중견기업의 AI 활용 수준은 1~2%에 불과하다. 공동 활용형 자율실험실 구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 거점이 마련되면 수십수백 개 기업이 막대한 투자 없이도 첨단 인프라를 공유할 수 있고, 개발 비용은 30~60%, 개발 기간은 50% 이상 줄며, 시장 진입도 크게 앞당길 수 있다.

경제적 효과도 크다. 울산이 AI 기반 고부가 화학소재 개발의 거점이 되면 향후 5년간 2000명 이상의 전문 인력 고용이 가능하다. 지역 화학소재 수출액은 연간 20조원에서 2030년까지 최대 27조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위기 극복이 아니라 울산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성장 동력이다.

정부는 울산 화학산업을 산업위기지역으로 지정하고, 연구개발 지원과 전문 인력 양성, 규제 완화에 나서야 한다. 기업도 단기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장기 안목으로 AI와 자율실험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무엇보다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지역 공공기관이 중심이 돼 자율실험실 거점을 마련하고 기업 수요를 모아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

결국 AI 자율실험실 구축은 개별 산업의 문제를 넘어 지역 혁신 생태계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산업 위기 극복과 고용 창출,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세 가지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전략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지금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속도감 있는 추진이 필요하다. AI 자율실험실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고, 범용 제품의 한계를 넘어 고부가 화학소재로 전환을 이끌어낼 때, 울산은 위기를 넘어 ‘AI 산업수도’라는 새로운 비전 아래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 엔진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조영신 울산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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