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면주 칼럼]“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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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면주 칼럼]“살려주세요”
  • 경상일보
  • 승인 2025.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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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면주 변호사

올해 여름은 윤유월이 들어서 그런지 유달리 길었다. 무더위의 끝자락에 최장의 추석 연휴를 보내던 중 남의 일 같지 않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경북 예천의 대학생이 취업 박람회 참석한다며 캄보디아로 출국했으나 연락이 두절됐고, 가족들에게 사고가 났으니 5000만원을 보내라는 협박 전화 끝에 시신이 고문과 폭행 흔적이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캄보디아 고수익 해외취업’ ‘월수 1000만원 이상 보장’ 등의 광고가 퍼지자 취업을 꿈꾸던 청년들이 캄보디아행 비행기를 탄 것이다. 도착하자 중국계 범죄조직에서 여권, 휴대폰 등을 압수하고 현지에서 운영 중인 ‘스팸 콜센터’ ‘보이스 피싱 조직’ ‘가짜투자 리딩방 조직’ 등에 투입했다고 한다. 거부하거나 반항하면 폭행과 고문을 가해 사망하는 사례도 발생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살려주세요” 하고는 끊어지는 전화를 받은 부모도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약 1000명 이상의 한국인이 캄보디아 사기 센터 등의 범죄조직에 연루돼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피해자는 가난한 제3세계 청년뿐 아니라 한국, 대만, 일본의 중산층 청년들까지 확산된다고 한다. 취업이라는 것은 생존을 위한 경제적인 기반일 뿐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아실현을 해나가는 인생의 통로이기도 하다. 충분한 공부와 스펙에도 인생의 통로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들의 절박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할 수 없다.

의아한 것은 동남아 각국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로 취업을 위해 몰려들고 있는데 우리의 청년들은 개발도상국에도 못 미치는 범죄 천국 캄보디아에 돈벌이를 위해 갔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다. 사실 캄보디아는 1950년경에는 경제 형편이 좋아서 우리가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 1975년 극좌 사회주의 혁명 조직인 크메르 루주의 ‘폴 포트’가 집권 후에는 ‘킬링필드’의 대량 학살로 이어진 지속적인 내전과 급진적인 통제 정책으로 현재는 국민소득이 1000달러에 불과한 불안정한 나라이다.

언론에서는 줄어가는 청년 일자리 대책과 정부의 해외 취업 중개업체에 대한 관리부실, 피해 신고 후의 늦장 대응 등을 질타하고 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 문제의 뿌리에는 단순히 해외 취업 사기 관리의 구조적 허술함보다 ‘한 방에 성공하겠다’는 우리 사회의 병리적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공정한 경쟁보다는 빠른 길, 노력보다는 눈앞의 고수익률을 통해 ‘어떻게든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집단 강박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근면·성실로 먼지 같이 쌓이는 저축보다 대박의 유혹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착각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탄광과 군수공장으로의 취업과 1960~1970년대의 서독의 광부와 간호사, 중동의 건설 노동자 등은 순수한 생존의 문제였다. 21세기 현재의 해외취업은 생존을 위한 강제적인 선택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통로로 정부에서도 K-인재 글로벌 진출을 장려하고 있다. 실상은 중소기업 기피 현상으로 국내의 갈만한 일자리는 줄어들고, 서울 집중화로 인한 끝없는 집값의 상승은 결혼 포기로 이어지는 등의 불안한 현실은 어중간한 청년들을 안전망 없는 해외로 내몰고 있다.

이는 경제적으로는 부국이 됐지만, 실속보다 외형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한 인재의 분배와 직업관 정립 교육의 실패로 성공 가능성 제로인 대박의 허상을 쫓는 집단적인 강박현상이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사기 공화국이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대박을 터뜨리고자 하는 심리의 만연은 사기꾼이 파고들 수 있는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인기 위주의 일회성 대책으로는 우리 청년의 미래는 없다.

이번 사태가 청년들의 일자리에 대한 절박함과 사회의 대박 현상이 교차하는 구조적 모순임을 진단하고 신중하게 메스를 들어야 할 것이다. 신속한 피해자 구출 여론이 들끓자 정부에서는 전세기를 띄워 캄보디아에서 각종 범죄 혐의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범죄자 60여명을 국외추방 형식으로 데리고 오는 촌극을 벌였다. 피해자를 구출하라니 피의자를 모셔왔다는 비아냥 속에 “살려주세요”의 메아리가 귓가에 맴도는 가을이다.

신면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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