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두 가지 상반된 정체성을 가진 도시다. 하나는 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을 품은 자타공인 1등 산업도시로서의 정체성이다. 반면 문화·관광·유통 등 서비스업 발전이 오랫동안 정체돼 흥미로운 변화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도시라는 인식도 있다. 두터운 중산층이 형성된 안정된 도시로 부러움을 사지만, 한편으로는 ‘노잼도시’라는 그다지 웃기지 않은 우스갯소리가 따라붙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울산은 달라지고 있다. 산업의 뿌리를 지키면서도 그 위에 문화의 온기와 활력을 더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1967년 시작된 뒤 오랫동안 중단됐다가 2023년 부활한 울산공업축제는 그 대표적 사례다. 이번 축제는 단순히 ‘공업’을 기념하는 자리가 아니라 퍼레이드, 공연, 불꽃축제, 드론쇼, 시민참여 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로 거듭나며, 제조업만 강한 도시가 아니라 문화까지 품은 복합도시로 나아가는 울산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복합도시로서의 울산의 지향점이 인구 정책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내국인과 외국인을 합친 울산의 총인구는 2015년 11월 120만 640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그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2010년대 중반 이후 조선·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의 침체로 울산의 고용상황이 악화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유입되던 인구가 줄고 유출이 늘어나 2015년부터 시도 간 인구이동이 순유출로 전환됐다. 둘째,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로 인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낮고, 오락·문화·의료·교통 인프라 등 정주 여건이 부족했던 점도 구조적인 인구유출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자는 울산이 앞으로도 제조업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후자는 그럼에도 서비스업 발전이 울산의 균형성장과 인구유지에 긴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행히 울산의 내국인 인구는 2023년 이후 감소 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는 조선·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의 회복에 힘입어 고용상황이 개선된 덕분이다. 2024년 합계출산율이 0.86명으로 수도권과 5대 광역시 중 가장 높은 가운데, 출생아 수가 전년보다 3.9% 증가한 점도 반가운 소식이다. 이처럼 내국인 인구 감소세가 둔화된 가운데, 조선업 일감 증가로 외국인 근로자 채용이 크게 늘면서 총인구 감소세는 거의 멈췄다. 산업의 활력이 인구감소 흐름을 일부 되돌리고 있는 셈이다.
제조업 경기회복과 인구감소세 둔화라는 긍정적 소식과 함께 울산의 문화·관광, 교통, 서비스업 측면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첫째, 문화·관광 인프라 측면에서는 2028년 국제정원박람회 유치가 대표적이다. 이는 태화강 국가정원을 세계적 생태공원으로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반구천 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역시 울산의 문화적 위상을 한층 높이고 있다. 공업축제·고래문화축제·장미축제·억새축제 등 지역축제도 규모가 커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SK에너지 공장 인근의 ‘공단야경 조망공간’(미디어 파사드) 조성, 일산해수욕장의 해양레포츠 시설 설치 계획, 시민야구단 창단 움직임 등 시민들의 관심을 끄는 이벤트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면서, ‘유잼도시’ 울산의 문화지형을 새롭게 그리고 있다. 개별적으로는 작은 변화일지라도 이러한 움직임이 연결되며 쌓여가는 문화·관광 자산은 결국 도시경쟁력으로 이어지며, 인구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교통 인프라 개선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부울경 광역철도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고, 울산 도시철도(트램) 건설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가 발표(8월)한 국정운영계획(안)에서 태화강역 활성화가 지역 주요 추진과제로 선정되며 장생포 수소트램 운행과 KTX 노선 강화(KTX-이음 증편, KTX-산천 신규 유치 등)도 적극 추진되고 있다. 교통망 확충으로 울산과 주변 도시간 시간거리가 단축되고 울산 도심과 산업단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 시민의 일상 반경이 넓어지고 인구·문화의 흐름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SK그룹과 아마존이 울산 미포산업단지에 국내 최대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것을 계기로, 첨단 지식기반 서비스업의 발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울산 산업계에 축적된 방대한 산업데이터와 새로운 AI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면, 울산은 AI 기반 제조혁신의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AI를 통한 주력 제조업의 고도화와 함께 AI 혁신기업 유치, AI 인재 육성 등 혁신 생태계 구축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울산의 서비스업 기반도 두터워질 수 있다.
울산은 현재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 산업 경쟁력과 정주 여건 간 균형을 통해 도시부흥과 인구증가를 추구하기 위한 필연적인 진화과정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거대한 변화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인구 문제는 수도권을 제외한 우리나라 전 지역이 안고 있는 구조적 과제이며, 저출산과 수도권 집중, 산업구조 변화와 정주여건 개선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다. 최근 시민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안긴 울산역 복합환승센터 건립 지연은 그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시행착오 또한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의 일부로 봐야 한다.
다행히 울산은 산업의 근간을 지키면서도 문화와 생활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들을 차근차근 쌓아나가고 있다. 겉으로는 느려보일 수 있지만, 울산의 변화는 멈춘 적이 없다. 그 꾸준함과 뚝심이야말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가장 울산다운 방식일 것이며, 이러한 노력들이 울산의 인구문제 해결을 위한 초석이 될 것으로 믿는다.
최정태 한국은행 울산본부 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