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학기술인재와 관련된 정부 회의에 자주 참석하게 됐다. 정부는 출산율 저하로 인한 학령인구의 감소, 해외와 의대로의 우수 과학기술 인재의 유출 등을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에 심각한 위협 요인들로 인식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필두로 양자컴퓨터, 바이오헬스, 우주항공, 국방 등 미래의 신산업은 어느 하나 과학기술에 기반을 두지 않은 것이 없는 현실에서 이러한 과학기술 인재들의 양적, 질적 하락은 국가적인 이슈가 돼버렸다. 현재 다양한 대응책이 범부처 차원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조만간 발표돼 시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학 교수로서 과학기술 교육의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지난 6월11일자 칼럼에서 교육의 변화가 전문지식 전달에서 역량교육으로 변화해야 함을 피력한 바 있다. 대학 교육이 전문지식 전달에 머물러 있다면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과학기술은 빠르게 발전해가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학문의 경계도 무너지며 융합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 돼간다.
예를 들어 생명과학에서 단백질 결정을 키워서 구조를 연구하던 전통적인 단백질 구조학은 인공지능 알파폴드의 등장으로 변화를 강요받게 됐고, 기계공학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로봇과 자동차도 피지컬 AI, 자율주행, 전기자동차 등의 등장으로 전기전자공학, 컴퓨터공학과의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
학문 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과 더불어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또 다른 중요한 변화이다. 특히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는 AI 기술의 발전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기계학습의 등장 이후, 딥러닝, 생성형 AI 등 기술의 개발과 변혁을 따라 잡기에는 정규교육을 통한 전문가 교육은 벅찬 상황이다. 대학의 교육이 일년을 주기로 교과과정이 운영되는 특성상 새로운 전문교육을 준비하는 동안 채 일년이 지나지 않아 새로운 기술이 나오는 상황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또한 최근 글로벌 빅테크기업들의 AI 전면 도입으로 인한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을 포함한 대량해고 사태는 앞으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 더욱 고민스럽게 만들고 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아마존은 당장 3만명 해고를 필두로 2030년까지 로봇자동화 등을 통해 60만명 해고를 예고하고 있다. 한 가지 학문을 전공하면 평생을 그 분야의 전문가로 살아갈 수 있었던 시기와 비교해보면 현재의 상황은 전문가, 과학기술 인재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제고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된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선언했던 세계경제포럼(WEF)은 이러한 디지털변혁을 대비하기 위한 21세기에 요구되는 16가지 역량을 2016년에 발표했다.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면 수리, 과학적 문해력 등을 포함한 6가지 기초적 문해력, 글로벌 도전을 직면하기 위한 4가지 핵심역량,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요구되는 6가지 캐릭터 특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캐릭터 특성에는 호기심, 진취성, 끈기있는 지속성·그릿(Grit), 변화에 대한 적응력, 리더십, 사회 문화 의식이 포함된다. 이러한 역량이 낯설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갈 미래세대를 교육해야 하는 관점에서 새롭게 고민돼야 할 역량들이다. 수업을 통해 얼마나 지식적으로 잘 습득했는지 여부를 시험을 통해 평가하는 것을 넘어서 정답이 없는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호기심과 끈기를 가지고 해결해 갈 기회가 교육현장에서 제공돼야 할 것이다.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정해진 정답을 효율적으로 찾아 좋은 성적받는 것으로는 대응할 수가 없다. 선배들에게 받은 족보를 가지고 시험과 과제를 잘 수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패가 용인되고 충격이 없는 교육현장에서 이러한 도전을 경험할 기회가 학생들에게 제시되지 않는다면 이들은 졸업 후 사회에서 가혹한 현실에 내던져질 수밖에 없다.
배성철 UNIST 교학부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