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의 도서관 산책(10)]동화와 철새를 즐기는 곳, 철새마을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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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란의 도서관 산책(10)]동화와 철새를 즐기는 곳, 철새마을도서관
  • 경상일보
  • 승인 2025.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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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 박사
▲ 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 박사

가을바람이 스치듯 지나가면 태화강 삼호대숲의 하늘 위로 까마귀 떼가 검은 구름처럼 몰려든다. 낮 동안 먹이활동을 마친 철새들이 해가 기울 무렵 한두 마리씩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내 수천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올라 거대한 군무를 펼친다. 마을 전체가 날갯짓 소리로 진동하고, 노을 진 하늘은 생명의 파동으로 가득 찬다. 이 장관 앞에서 사람들은 저절로 걸음을 멈춘다.

그 철새의 마을, 울산 남구 삼호동 중심에 2021년 11월 철새마을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삼호동 와와커뮤니티하우스 3층, 64평 남짓한 공간은 크지 않지만 주민의 일상 속에 자연스레 스며든 복합문화공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따스한 햇살과 맑은 공기가 이용자를 반긴다. 넓은 창가에는 와와공원을 내려다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고, 신문을 읽는 어르신, 노트북으로 공부하는 학생, 한가로이 책장을 넘기는 이들의 모습이 조화롭게 한 장면을 이룬다. 8000여권의 장서 가운데 입구에는 문학과 신간이 배치돼 있어 누구든 가볍게 책을 집어 들 수 있다.

이 도서관을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은 바로 ‘동화’다. 동화를 주제로 한 특화도서관으로, 개관 초기부터 동화 작가가 상주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독서에서 글쓰기, 더 나아가 작가 양성으로 이어지는 체계적 교육 과정을 마련한 ‘동화작가 꿈 심는 도서관’ 모델은 전국 최초 시도 사례로, 지역 안에서 문학의 씨앗을 틔우는 실험이라 할 만하다.

▲ 철새마을도서관 입구 로비.
▲ 철새마을도서관 입구 로비.

대표 프로그램인 ‘쓰리쓰리 동화쓰리!’는 어린이와 성인을 대상으로 1년간 운영되는 창작 글쓰기 과정이다. 어린이작가교실(저학년·고학년)과 성인창작반을 편성하며, 누구나 단계적으로 창작 능력을 키워 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 성과도 뚜렷하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전국 공모전에서 53명의 수상자가 배출됐고, 4명의 수강생이 신인 동화 작가로 등단했다. 해마다 연말 열리는 작품 발표회에서는 아이와 어른이 함께 쓴 동화가 도서관 로비에 전시된다. 이 가운데 <참치캔 게임>과 <와, 고래가 우리 집에 놀러 왔어요>와 같은 창작 동화책이 출간되며 지역 아동문학 활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작은 도서관에서 시작된 창작 활동이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지역 문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서관 한쪽에는 ‘자연생태 도서 코너’가 자리한다. 태화강 대숲이라는 입지적 배경 덕분에 이 코너는 단순한 분류 서가를 넘어, 자연과 도서관을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어린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생태·환경 도서부터 조류, 식물, 기후변화 등 전문 분야의 책까지 갖추고 있다.

삼호동은 사계절 내내 철새 생태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지역이다. 10월부터 3월까지는 겨울 철새 떼까마귀가, 4월부터는 여름 철새인 백로류의 번식이 이어진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지만, 이곳에서는 일상의 한 장면이다. 매년 11월 열리는 삼호버드페스티벌이 되면 탐조 대회에 참여하고자 가족 단위 방문객이 도서관을 찾아 생태 정보를 얻는다.

도서관 옆 철새홍보관 옥상 전망대에는 망원경이 설치돼 있어 누구나 철새를 관찰할 수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잠시 쉬고 싶을 때, 그곳 옥상으로 올라가 망원경을 들여다보면, 대숲 위를 자유롭게 오가는 새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일상 속에서 자연을 만나는 여유로운 순간이다.

▲ 철새마을도서관 전경.
▲ 철새마을도서관 전경.

해외 도서관에서도 조류 관찰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운영 모델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공공도서관은 망원경, 관찰 가이드북, 기록 노트가 담긴 ‘조류 관찰 키트’를 대여해 이용자가 도서관 밖 자연을 찾아 나서도록 돕는다. 신시내티 해밀턴카운티 공공도서관의 그레인지 분관에서는 쌍안경과 체크리스트를 들고 조용히 탐조 산책을 즐기는 ‘새멍’(새+멍 때리기)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오리건주 힐즈보로 공공도서관은 사서와 함께 관찰 산책을 진행하고, 먹이 대 주변의 새를 기록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영국 서머싯도서관은 영상 콘텐츠로 가상 자연 투어를 체험하게 한 뒤 실제 관찰 키트를 대여해 생태 활동으로 이어지게 한다. 이러한 사례는 도서관이 단순한 독서 공간을 넘어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잇는 생태·문화 거점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철새마을도서관은 이러한 세계적 흐름과 가장 잘 맞닿아 있다. 문학 창작 프로그램과 철새 서식 환경을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면, 생태와 문학이 만나는 새로운 공공도서관 모델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탐조 키트 대여, 생태 체험, 철새 산책 프로그램 등으로 확장한다면 지역 자연의 장점을 살린 배움의 장이 더욱 풍성해진다.

삼호동이라는 지리적 배경, 철새의 서식지라는 생태 환경, 그리고 문학이라는 문화적 토양이 고르게 어우러진 철새마을도서관은 책과 자연, 사람을 잇는 든든한 가교가 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까마귀 떼가 삼호동을 찾아온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군무를 바라보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일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여행이자 오래 남을 기억이 될 것이다.

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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