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APEC 의제 중 하나인 ‘인공지능(AI) 협력’은 21세기 의료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 키워드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치과 분야에서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의 발전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진료의 철학과 치과의사의 정체성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치과진료는 치과의사의 세밀한 손기술과 더불어 환자와의 직접적 소통이 밀접히 결합된 영역으로, AI 기술의 도입은 진료의 효율성 향상뿐만 아니라 인간만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을 돌아보게 한다.
AI 기술은 이미 치과 임상 전반에서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영상 분석 AI는 방대한 치과 영상을 학습하여 치아우식, 치근단 병소, 치주질환 등을 자동으로 판독하며, 조기 진단율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있다. 로봇 수술 시스템은 임플란트 식립의 각도, 깊이, 위치를 정밀하게 계산하여 시술의 안정성과 정확도를 극대화한다. 또한 AI는 환자의 방사선 사진, 교합 상태, 유전적 요인, 생활습관 데이터를 종합 분석해 개인 맞춤형 치료 계획을 자동으로 제안한다. 이는 치과 진료의 표준화와 효율화를 가능하게 하며, 의료 접근성 향상에도 기여한다.
그러나 이러한 AI 기술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치과 분야의 AI 활용에는 몇 가지 본질적인 한계와 문제점이 존재한다. 첫째, 데이터 편향의 문제이다. 치과 영상 자료는 인종, 연령, 구강 구조에 따라 매우 다양하며, AI가 학습한 데이터가 특정 집단에 치우쳐 있을 경우 오진의 위험이 따른다. 둘째, 알고리즘의 불투명성 역시 문제다. AI가 특정 진단 결과를 도출한 과정이 명확히 해석되지 않는다면, 의료 책임의 주체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 셋째, 로봇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치과의사의 임상 판단력과 손의 감각이 약화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치과 진료는 ‘정밀함’뿐만 아니라 적절한 ‘상황 대응력’이 필요하다. 예기치 못한 출혈, 조직 반응, 환자의 불안 등은 여전히 인간의 직관과 경험으로만 통제 가능하다. 기술적 편의가 의료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치과 진료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치과의사는 단순히 치아를 치료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환자의 심리와 통증을 이해하며 신뢰를 형성하는 ‘인간 전문가’이다. AI가 아무리 정밀한 분석을 수행하더라도, 환자의 불안한 표정을 읽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공감 능력은 결코 모방할 수 없다. 치료 과정에서의 판단은 수치나 영상 정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환자의 생활습관, 경제적 여건, 치료에 대한 수용도 등 복합적인 요인을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이러한 판단은 인간의 직관과 윤리적 통찰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AI 협력의 진정한 의미는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AI를 통해 전문성과 인간성을 동시에 확장하는 데 있다. 치과의사는 AI가 제시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근거로 보다 정밀하고 환자 중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즉, AI는 ‘보조적 도구’로서 진료의 효율을 높이고, 치과의사는 ‘통제자이자 설계자’로서 의료의 방향을 이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치과의사 교육과정에는 데이터 분석 능력, AI 윤리, 그리고 인간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AI 협력 시대의 치의학은 기술과 인간의 경계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분석하고 정밀한 수술을 보조할 수 있지만, 치료의 의미를 환자와 공유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치과의사의 손끝에 남는 것은 단순한 치료 결과가 아니라, 환자와의 신뢰와 공감이라는 인간적 가치일 것이다. AI와의 협력은 치과의사의 존재 이유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역할을 재정의하는 과정이다. 기술의 진보 속에서도 치과의사는 ‘사람의 입속을 다루는 사람의 손’으로서,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따뜻한 전문성을 지켜나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AI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자 치의학의 본질일 것이다.
손재희 CK치과병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