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째 한 진돗개와 함께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반려동물을 키워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반려견은 제 일상과 가족의 한 부분이 됐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며,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존재다. 최근 건강이 악화돼 병원을 찾았을 때, “이제는 치료를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말을 들었다. 현실적인 판단일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생명을 두고 비용이 먼저 고려되는 현실을 마주하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짧은 문장이지만,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돌보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고 존중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 경험을 통해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과연 반려동물을 진정한 가족으로 대하고 있는가.
국내 반려 가구는 591만가구로 전체의 26.7%, 반려 인구는 1546만명을 넘어섰다. 이제 반려동물은 일부의 취미가 아니라 사회의 새로운 가족 형태로 자리 잡았다.
또한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복지 국민 의식조사’ 결과에서도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과 책임 인식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제도와 문화는 여전히 이러한 인식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진료비 문제다.
병원마다 진료비 편차가 크고, 치료 과정에 대한 정보도 불투명하다. 보호자는 충분한 설명 없이 비용 부담과 선택의 압박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동물병원 진료비 공개, 견적서 교부, 진료 내역 고지 확대 등을 추진하며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이는 동물 의료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지만, 여전히 제도적 기반은 미흡하고 보호자가 신뢰할 수 있는 의료 정보 체계도 부족하다. 반려동물 역시 ‘생명’이라는 원칙에 따라, 합리적이고 공정한 의료 체계 속에서 보호받아야 한다.
해외는 이미 한 걸음 더 앞서가 있다. 독일 민법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명시하며, 동물을 단순한 재산이 아닌 법적 보호의 대상인 생명체로 규정했다. 스페인은 2022년 민법 개정을 통해 동물을 ‘감정이 있는 살아있는 존재’로 명시했고, 영국은 같은 해 ‘Animal Welfare(Sentience) Act 2022’를 제정해 모든 정책에 동물의 지각성을 고려하도록 했다. 이는 ‘소유의 대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법적 인식이 바뀐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도 점차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개 식용 종식법’은 생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한 단계 성숙했다는 신호다. 정부는 반려동물 등록제 개선, 유기동물 보호체계 강화, 보호자 교육 확대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보호자들은 병원비, 노령 동물 돌봄, 장례 절차 등에서 제도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이제 지방정부 역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반려동물 진료비 정보공개 시스템 구축, 공공형 동물병원 운영, 반려동물 장례시설 확충, 유기동물 보호소의 운영 개선 등은 지역 차원에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과제다. 또한 반려동물 산업을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생명 돌봄 기반의 공공서비스 영역’으로 바라보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중의 문화’다. 반려동물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다. 그들이 아플 때 끝까지 함께 고민하고, 떠날 때 진심으로 슬퍼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반려문화가 정착된 사회일 것이다. 의원으로서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한 사람의 보호자로서 말하고 싶다.
“반려동물은 우리 삶의 조용한 가족이다.” 그들의 생명을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책임을 나누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 따뜻한 인식의 변화가, 결국 우리 모두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라 믿는다.
백현조 울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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