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한 신라 금관 모형이 화제가 되었다. 금관은 황금색을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춤형 선물이자 경주 문화재의 상징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신라 금관 6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는 천마총 금관의 이 모형은 한 장인의 손에서 20일간의 작업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 10월28일부터 12월14일까지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이라는 전시명으로 특별전을 열고 있다. 국내에 현존하는 금관 6점을 한자리에서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보통의 기회가 아니어서 연일 이를 관람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금관이라고 하면 신라 금관을 떠올리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머리 테두리와 날 출자 모양의 가지, 옥 장식으로 이루어지는 이미지를 누구나 단숨에 연상해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이번에 6점의 신라 금관을 경주국립박물관에 모아서 전시한다는 것은 이러한 ‘익숙한 금관’에서 벗어나 극히 ‘새로운 것’이 되어 우리의 관심으로 다가왔다는 의미가 있다. 이른바 ‘아이돌 완전체’ 느낌이다. 발굴지역, 전시목적 등 여러 이유로 각 금관은 여러 박물관에서 나누어 보존하고 있다. 금관총 발굴 104년 만에 6개 금관이 완전체를 이룬다고 하니 평소 문화재에 관심 있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담당 큐레이터의 말에 의하면, 이번 전시 일정 조율에 2년이 걸렸고 향후 100년 이내에 6점의 금관이 다시 모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이와 비슷한 여러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일례로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사유의 방이 있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비교하면서 관람하는 것은 감상을 넘어 한마디로 감동 이상이다. 시선을 한 반가사유상에서 다른 반가사유상으로 오가며 차이점을 습득하는 것에서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전에 반가사유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교과서 등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국내에 존재하는 것 중 가장 뛰어난 두 점을 모아 귀한 전시공간을 마련함으로써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과 가치가 된 것이다.
이번엔 문화재 이야기는 아니나 익숙하던 것이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예를 광고에서 찾아본다. 김우빈을 모델로 내세운 HD현대중공업의 광고가 요즘 빅히트를 치고 있다. 종류별로 각 대형 운반선을 등장시키고 타이타닉 영화장면을 패러디하는 등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기업광고를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다. 동구 쪽으로 가면 흔히 볼 수 있어 우리들 울산 사람에겐 익숙하여 평범할 정도였던 대형 선박들이 아름답게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울산은 선박, 자동차, 에너지, 화학공업 도시로서 재미없는 회색빛깔 나는 도시라고 인식되고, 울산에 사는 사람들도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수증기, 무채색의 작업복에 익숙해져 있다. 그 속에 내재된 과학과 연구, 치열한 산업전선에서의 피와 땀 등 그 이면을 우리는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전혀 익숙하지 않고 마치 처음 접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다. 이번 광고를 보면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어내게 된다. 물론 생각할 것이 많다. 저 아름다운 결과물을 얻기까지 희생된 분들도 많았을 것이고 조선업이 어려웠을 때의 고통도 거대한 바다 위 예술품에 깊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울산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반구천 암각화’를 품고 있고, ‘위대한 공업도시 건설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이 속에서 살다 보니 암각화니 산업수도니 자주 접하여 이제는 마치 공기마냥 아주 익숙하다. 그러나 위 사례들처럼 익숙한 것도 바라보는 방법과 방향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다. 재미없는 2대 도시로 울산을 꼽기도 하는데 이를 탈피하는 묘안을 찾으려 한다면 위의 사례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익숙하여 귀하게 보지 않았던 것들이 많다. 그렇지만 이를 심도 있게 관찰하여 그 진가를 발견하여 값 매김을 한다면 새롭고 귀한 것이 될 수 있다. 너무 익숙해서 그 가치를 놓치고 있는 것이 없는지 우리는 주위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김지환 지킴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