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AI 부정행위, 금지보다 교육체계의 혁신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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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AI 부정행위, 금지보다 교육체계의 혁신이 답이다
  • 경상일보
  • 승인 2025.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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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화 동의대 교직학부 교수 동의대메타버스교육연구소장

최근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에서 잇따라 드러난 ‘AI 부정행위’ 사태는 단순한 일탈을 넘어 우리 대학 교육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서울대는 ‘통계학실험’ 시험에서, 연세대는 ‘자연어 처리와 ChatGPT’ 강의에서, 고려대는 1400명이 응시한 교양시험에서 집단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재시험과 0점 처리, 행정조치가 이어지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이 현상을 일부 학생의 도덕성 문제로만 돌리기 어렵다. 대형 강의와 비대면 시험 구조 그리고 생성형 AI의 급속한 확산이 겹치며 ‘윤리에 의존한 평가 체제’의 한계를 폭로한 것이다. 연세대의 경우 600명이 동시에 비대면으로 시험을 치렀지만 감독은 영상 제출에만 의존했고 서울대는 AI 사용 금지 규정을 두었으나 실제 통제는 불가능했다. 학생들은 문제를 푸는 대신 AI에게 맡기고 교수는 그 결과를 다시 AI로 검증하는 시대가 된 셈이다. ‘AI를 쓰면 안된다’는 문장은 있었으나 왜 안 되는지 어디까지 써야 하는지에 대한 설계는 없었다.

이는 AI를 금지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미 학생들은 과제 작성, 데이터 분석, 글쓰기, 코딩 등 학습의 거의 모든 과정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방향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를 막는 교육’이 아니라 ‘AI와 함께 책임 있게 배우는 교육’이다. 대학이 ‘AI 시대의 학습윤리’를 새롭게 교육방식으로 재정립하지 않는다면 같은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먼저, 모든 대학은 AI 리터러시와 디지털 윤리 교육을 필수화해야 한다. AI의 작동 원리와 한계, 저작권과 표절, 편향과 오류, 인용과 출처 표기 등 실제 상황에서 마주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교양과목이 필요하다. 단순히 ‘쓰지 말라’가 아니라 ‘어떻게, 어디까지, 어떤 책임으로 쓸 것인가’를 가르쳐야 한다. AI가 낸 답을 검증하고 근거를 찾아 서술하는 능력 자체가 새로운 학습 역량이 된다. 윤리는 규범이 아니라 기술로서 가르쳐야 한다.

둘째, 수업계획서에는 AI 사용 규정을 명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교수마다 임의로 금지하거나 허용하는 방식은 혼란을 낳는다. 과제나 시험에서 허용되는 도구와 범위, 인용 방법, AI의 기여도를 표기하는 기준을 미리 제시하면 된다.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학생도 책임을 배운다.

셋째, 평가 방식을 감독 중심에서 검증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AI를 감추게 만들면 부정행위가 되고 드러나게 만들면 학습이 된다. AI 활용을 허용하되 결과보다 사고 과정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오픈북·오픈리소스 시험, 프로젝트형 과제, 그리고 개별 구술 평가가 대표적이다. 코드를 AI가 짰더라도 학생이 직접 원리를 설명하고 수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학습이다. 기술적 통제보다 평가 방식의 개선이 더 강력한 억제력이다.

넷째, 학습 공동체의 자율적 윤리규약을 마련해야 한다. 모든 학생을 잠재적 부정행위자로 대할 수는 없다. 오히려 학생들이 직접 ‘AI 사용 원칙’을 만들고 프롬프트와 출처, 기여도를 공개하도록 참여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스스로 만든 규칙은 외부의 통제보다 강한 자율성을 낳는다.

이러한 지금의 사태는 결국 AI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설계의 문제다. AI는 학생의 능력을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능력을 드러내는 시험대가 되어야 한다. 윤리는 규제가 아니라 길러야 할 역량이 되어야 한다. 교육부가 추진 중인 AI 윤리교육과 리터러시 강좌는 시작일 뿐이다.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평가 방식을 혁신하고 교수들이 AI를 활용한 수업 모델을 실험해야 한다.

‘AI를 금지하는 대학’이 아니라 ‘AI를 책임 있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학문 공동체의 신뢰를 지키는 길이다. AI가 생각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대학은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그 답을 수업 구조와 평가 방식의 변화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대학 교육이 가야 할 방향이다.

이미화 동의대 교직학부 교수 동의대메타버스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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