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영의 컬러톡!톡!(46)]색의 치명적인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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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영의 컬러톡!톡!(46)]색의 치명적인 아름다움
  • 경상일보
  • 승인 2025.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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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영 울산대학교 교수·색채학

한 폭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색의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에메랄드처럼 선명한 녹색, 석류처럼 붉은 주홍, 해바라기처럼 눈부신 노란색. 그러나 이 찬란한 아름다움 이면에는 건강을 해치는 치명적인 유해물질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다. 색채의 역사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이면서 동시에 그 대가로 치러야 했던 희생의 기록이다.

1814년 독일에서 개발된 에메랄드 그린은 구리 비소산염으로 만들어진 선명한 녹색 안료였다. 당시 어떤 녹색도 따라올 수 없는 발색력으로 빅토리아 시대를 사로잡았고, 영국의 벽지 생산량은 40년 만에 26배나 폭증했다. 그러나 습기와 곰팡이가 있는 환경에서 이 녹색은 치명적인 비소 가스로 변했다. 1861년 인조 꽃에 염료를 바르던 19세 마틸다 쇼이러는 녹색 구토를 하며 “보이는 모든 것이 녹색”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했다. 나폴레옹의 죽음 또한 침실 벽지에서 검출된 이 안료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심지어 현재까지도 19세기 책 표지에서 비소가 검출돼 독일 도서관들이 대중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한 크롬 옐로의 노란색은 납 크롬산염을 주성분으로 하며, 그의 걸작 ‘해바라기’ 연작에 생명력을 주었다. 그러나 2015년 싱크로트론 연구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이 그림의 50% 이상 영역에서 크롬이 화학적으로 환원되며 서서히 갈색으로 변색되고 있다는 것이다. 육안으로는 아직 미미하지만, 우리가 보는 해바라기는 이미 원본과 달라지는 과정을 겪고 있다. 이 납 기반 안료는 아이러니하게도 예전엔 어린이 안전을 위해 스쿨버스 색으로 선택되기도 했었다.

기원전 8000년부터 사용된 버밀리온은 수은과 황의 주황색 화합물이다. 로마 시대 광산에서 죄수들이 채굴을 했고, 광산 형기는 사실상 사형 선고였다. 상대적으로 독성이 낮지만 가열되거나 습한 환경에서 수은 증기를 방출한다. 최근 연구에서 루벤스의 작품 속 버밀리온색이 습한 공기의 염화물과 반응해 서서히 변색되는 원리가 밝혀졌다.

고대부터 사용된 납 백색은 가장 오래된 유해 안료다. 중세 유럽 귀부인들은 창백한 피부를 위해 납 백색 분을 얼굴에 발랐고, 이는 피부 손상과 납 중독을 일으켰다. 엘리자베스 1세도 이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납은 뇌 발달을 저해하고 신경계를 손상시키며, 특히 어린이에게 치명적인 재료이다.

물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색들은 과거와 달리 안전하고 친근한 대상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색재료의 안전성 뒤에는 아름다움을 보증하는 수많은 과학적 노력이 담겨 있다. 색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에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슬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신선영 울산대학교 교수·색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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