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025년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 조직 내부에서도, 시장에서도, 기술 환경에서도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가 거세게 지나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시대를 단순히 ‘변화의 시대’가 아니라 혼돈의 시대, 그것도 혼돈이 상수가 된 시대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 속에서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힘은 무엇일까요? 바로 혼돈 속에서도 의미를 읽어내는 통찰력, 그리고 그 통찰이 탄생할 수 있는 환대의 리더십입니다.
2025년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는 여전히 VUCA와 BANI입니다. VUCA가 말하는 변동성·불확실성·복잡성·모호성은 이미 익숙해 보일 만큼 오래된 경영 환경이 되었지만, 올해는 그 양상이 훨씬 더 강하고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AI 기술은 일상과 산업의 경계를 지우며 재편을 이끌었고, 지정학적 충돌은 공급망과 수출입 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조선·에너지·제조업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받았고, MZ세대가 중심이 된 조직문화 변화는 리더십의 방식 자체를 다시 쓰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예측보다 감지, 분석보다 통찰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BANI가 다시 중요한 개념으로 떠오릅니다. Brittle(취약함), Anxious(불안정함), Nonlinear(비선형성), Incomprehensible(이해 불가능성). 작은 사건이 큰 결과를 만들고, 경험의 법칙이 무너지고, 예측이 맞지 않는 시대.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예측 능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숨어 있는 의미를 읽어내는 통찰력입니다.
통찰력은 갑자기 번쩍 떠오르는 감각이 아니라, 정보가 충분히 쌓이고 연결될 때 나타나는 근본적 이해입니다. 즉, 통찰의 출발점은 리더 개인의 머릿속이 아니라 조직 전체에서 올라오는 ‘정보의 흐름’입니다. 현장에서 고객과 거래처를 만나고, 제조 라인의 변화를 체감하고, 시장의 미세한 떨림을 느끼는 사람은 리더가 아니라 바로 팀원들입니다. 리더의 통찰력은 결국 팀의 관찰을 모으고 연결하는 힘에서 나옵니다. 여기서 두 가지 리스크, 검은백조와 회색코뿔소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검은백조는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충격이지만, 정작 많은 조직을 위협하는 것은 이미 보이는 데도 외면하는 위기, 회색코뿔소입니다. 올해 한국 기업들이 흔들린 이유도 대부분 여기에 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미뤄왔던 과제들, 익숙한 불편함을 방치했던 습관들, ‘지금은 바쁘니까’라는 이유로 지나쳐 온 위험 신호들. 리더가 통찰을 잃는 순간, 조직 전체는 보이는 위험조차 보지 못하는 구조가 됩니다. 그렇다면 통찰이 흐르는 조직은 무엇이 다를까요? 바로 리더의 태도가 다릅니다. 리더가 먼저 정보를 환대하고, 팀원의 관찰을 존중하며, 어떤 의견이든 열린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를 ‘Welcome & Thank You 리더십’이라 부릅니다. 팀원이 작은 징후라도 들고 왔을 때 리더가 “어서 와, 그리고 고마워.”라고 말하는 순간, 그 조직은 이미 변화 감지 능력에서 우위를 갖게 됩니다. 이 두 단어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정보의 흐름을 만들고, 조직의 민감도를 높이며, 통찰이 생성될 토양을 준비하는 전략적 행동입니다. 팀원은 자신이 들여온 정보가 얼마나 존중받는지를 보고 다음 행동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리더의 환대가 사라지는 순간 조직은 통찰을 잃고, 민첩성도 함께 무너집니다.
2025년의 마지막 한 달을 보내는 지금, 리더는 스스로에게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올해 팀의 목소리를 얼마나 환대했는가?” “나는 정보가 흐를 수 있는 조직 환경을 만들었는가?” “나는 회색코뿔소를 보았을 때 눈을 돌리지 않고 조직을 깨우는 역할을 했는가?” “그리고 나는 통찰이 자랄 수 있는 리더였는가?”
앞으로의 시대는 많은 것을 아는 리더가 아니라, 정보를 열어주고 통찰을 연결해내는 리더, 그리고 팀의 목소리를 환대로 받아들이는 따뜻한 리더가 조직을 살아 있게 만들 것입니다.
정은혜 한국지역사회맞춤교육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