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도로 위는 찰나의 판단이 생사를 가르는 공간이다. 시속 60㎞로 달리는 자동차는 1초에 약 17m를 이동한다. 운전자가 표지판의 글자를 읽고 해석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단 1, 2초라도 지체된다면,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하는 개념이 바로 ‘인지적 직관성(Cognitive Intuitiveness)’이다. 이는 문자를 해석하는 이성적 사고(Cortex)를 거치지 않고, 색을 보는 순간 뇌가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만드는 ‘0.1초의 마법’이다.
최근 프랑스 렌(Rennes)에서 진행된 ‘컬러 자전거 정류 공간(Sas velo)’ 프로젝트는 이 인지적 직관성을 도시 디자인에 완벽하게 구현한 사례다. 교차로 신호 대기선 앞,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앞서 대기하는 이 좁은 공간은 늘 사각지대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렌 시는 이곳에 단순한 흰색 실선 대신, ‘RELAX’, ‘CALMOS(진정해)’와 같은 문구와 함께 고채도의 파랑, 노랑, 초록의 색채 그래픽을 입혔다.
이 화려한 색채는 단순히 도시를 예쁘게 꾸미기 위함이 아니다. 회색 아스팔트 위에서 이질적으로 튀는 색상들은 운전자의 시각 중추를 강하게 자극한다. 운전자는 무의식적으로 “저기는 밟으면 안되는 특별한 공간”이라고 인지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브레이크를 밟는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는 자전거 이용자의 영역을 시각적으로 확장하여 운전자와의 충돌 위험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주변에도 인지적 직관성의 훌륭한 성공 사례가 있다. 바로 고속도로의 ‘노면 색깔 유도선’이다. 복잡한 분기점에서 운전자를 혼란에 빠뜨리던 네비게이션의 음성 안내 대신, “분홍색을 따라가세요”라는 단순한 시각 정보는 도로 위의 혁명이 되었다. 실제로 유도선 설치 후 분기점 교통사고가 23%나 감소했다는 한국도로공사의 통계는 색채가 가진 기능적 힘을 증명한다.
최근 도입된 ‘노란색 횡단보도’와 지하차도의 ‘3색 수위표’ 역시 같은 맥락이다. 글자를 읽을 겨를이 없는 긴급한 상황에서, 우리의 뇌는 학습된 색채 기억(빨강은 위험, 노랑은 주의)을 통해 즉각적으로 위험을 감지한다.
색은 빛의 파장이 만들어내는 물리적 현상이지만, 인간의 뇌 속에서는 가장 강력한 신호 체계로 작동한다. 이제 공공 디자인에서 색채는 ‘미적 장식’을 넘어 시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사회적 인프라’로 기능해야 한다. 렌의 자전거 도로가 보여준 것처럼, 때로는 과감한 색 한 방울이 백 마디의 경고 문구보다 더 직관적으로 우리의 생명을 지킨다. 회색 도시에 입혀지는 안전한 색채들이 더 많은 사고를 예방하는 든든한 방패가 되기를 기대한다.
신선영 울산대학교 교수·색채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