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대표하는 숫자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출생연월일을 받고, 학교에 입학하면 출석번호를, 성인이 돼서는 학번을, 취직 후에는 사번을 부여받습니다. 일생을 거치며 고유한 수가 사람을 대신해 불리고, 그를 통해 옆 사람과 구분됩니다. 마트의 신선 코너에 놓인 우유처럼 말이죠. 제조 일자가 다른 우유들은 재고 관리를 위해 번호로 정렬됩니다. 멀리서 보면 개별적인 차이는 사라지고, 오와 열을 맞춘 배열만이 보입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사각형의 배열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번호표에 가려진 사소한 모서리를 찾아주는 이들. 예기치 않게 만난 그들을 우리는 인연이라 부릅니다.
모든 관계에는 저마다의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십 년. 치기 어린 영원을 약속하던 수식어들은 옅어지고, 우연히 알게 된 이름 석 자만이 주변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예측하기도 단정하기도 어려운 사람 관계. 다만 이곳에선 조금 다릅니다. 시간 단위로 계획된 하루와 한 달, 그리고 일 년의 만남을 지나 애국가 제창과 함께 헤어짐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끝이 있는 만남을 시작한 지 297일, 우리는 2주 뒤에 작별합니다.
추웠던 겨울, 흰 봉투를 열어 이름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초침이 움직였습니다. 묵은 먼지를 털고 의도된 첫 만남을 준비하던 3월, 분침은 이미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계획과 준비가 늘 결과를 장담하지 않듯, 예상치 못한 변수로 여러 번 삐끗했습니다. 마지막 시침이 끼워진 건 답지 않은 모습을 보인 순간, 괜히 자존심을 부린 하루, 후회가 남은 금요일이었습니다. 서로의 여러 단면을 마주한 뒤 역설적으로 시간은 빠르게 줄었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상황도 변한다는 걸 처음 깨달은 순간,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 찾아옵니다. 이럴 때는 소격효과를 생각합니다. 관객의 몰입을 일부러 방해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방법인데, 생각보다 유용합니다. 제삼자의 눈으로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덩어리였던 시간은 조각으로 나뉘고, 그제야 감정의 윤곽도 함께 나타납니다.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문장입니다. 사랑받고 싶던 시절과 사랑을 주고 싶어진 지금, 같은 문장은 다르게 읽힙니다. 모두 일련번호 한 겹 아래를 알아봐 주는 이들과 어떤 일 년을 보냈을지 궁금해집니다. 끝이 없는 시계일지, 시간제한이 정해진 타이머일지는 끝에 다다라서야 알 수 있는 우리네 인연. 고의든 아니든 남긴 실수에는 미안함을, 너그러이 이해해 준 이들에게는 고마움을 전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배상아 복산초등학교 교사
※아이들과 함께한 1년의 이야기이고, 이제는 단순 일련번호를 넘은 사이이기에 함께한 1년을 다룬 [일 련] 번호로 제목을 지었습니다. 1년을 발음 기호로 표기하면 [일 련]이 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