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인력공단이 추진해 온 일학습병행 실감형 콘텐츠 개발 사업은 ‘위험과 비용은 줄이고 학습 효과는 높이는’ 직업능력개발 인프라 구축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XR(확장현실) 등의 첨단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산업현장 내 실제 공정과 장비, 그리고 다양한 사고 발생 상황을 가상공간에 반영하여 현장 근로자가 실제로 경험하기 어려운 상황을 가상으로 체험하고 반복 훈련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점이 이 사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사업은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시대적 정책의 흐름 속에서 출발했다. 산업현장의 고위험·고비용·고난도 작업은 실제 장비를 활용한 반복훈련이 어렵고 안전사고 위험과 비용 부담이 크다. 그리고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장은 장비나 공간의 부족으로 훈련환경 마련에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대체 훈련 방법이 필요하다. 공단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자 공동훈련센터와 대학 등과 협력해 직무별 실감형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일학습병행 훈련과정과 연계하여 전국적으로 확대·보급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현재 기계, 전기·전자, 재료, 건설, 산업안전 등 다양한 직무 분야에서 VR·AR 기반 실감형 콘텐츠가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특히, 한국폴리텍대학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은 국내 최초의 체험형 산업안전 교육장을 구축하여, 석유화학 및 플랜트 산업에서 발생 가능한 중대재해 상황을 VR·MR 기반 실감형 콘텐츠로 구현하였다. 실물 모형과 결합한 MR(혼합현실) 기술을 통해 몰입감 높은 조작 및 대응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건설 분야에서는 거제대학교와 한국폴리텍대학 진주캠퍼스 간 협력으로 개발된 크레인 VR 시뮬레이터가 대표적인 성과로 알려져 있으며, 많은 훈련생들이 이를 활용해 안전하고 체계적인 직업훈련을 받고 있다.
이 사업이 가진 장점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고위험 작업을 안전하게 가상공간에서 체험함으로써 산업안전 교육의 현실감과 경각심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기업의 안전투자 요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실감형 콘텐츠는 사고 예방과 법적 리스크 관리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둘째, 고가의 설비나 특수 환경 구축이 어려운 중소기업과 훈련기관에도 동등한 수준의 훈련환경을 제공해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높일 수 있다. 셋째, 반복 학습과 즉각적인 피드백 시스템으로 숙련도를 향상시키는 데 유리하다. 넷째, 디지털 세대인 청년층에게 친숙한 게임형 인터페이스를 도입해 기존의 ‘올드한’ 현장훈련 이미지를 바꾸고 일학습병행 제도의 홍보 효과를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업에도 분명한 한계와 과제가 존재한다.
콘텐츠 개발과 유지보수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며, 빠르게 변화하는 VR·AR 기술과 디바이스에 맞춘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산업별·기업별로 공정과 설비가 상이해 범용적 콘텐츠는 한계가 있고, 현장 전문가가 개발 초기부터 참여하지 않으면 교육 효과가 저하될 위험이 있다. VR 장비 착용의 물리적 불편함, 공간과 네트워크 제한, 장비 관리 문제도 사용자 경험을 저해하며, 강사와 관리자의 디지털 역량 부족이 콘텐츠 활용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또 지역별, 기관별 장비 및 인프라 장벽도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이에 공단은 보급형 실감형 콘텐츠 개발과 체험센터 지정 사업을 통해 거점기관이 주변 지역 기업과 훈련기관에 장비·교육·컨설팅을 지원하는 허브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향후에는 일학습병행 실감형 콘텐츠를 NCS 기반 직무능력 표준과 평가체계와 체계적으로 연계해 수행평가 및 역량 진단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며, 기업, 현장, 훈련교사, 학습자가 동반 참여하는 공동 설계와 모듈형 콘텐츠 구조를 통해 현장 맞춤형 교육을 확대하는 방향이 모색되어야 한다.
특히 신산업 분야인 반도체, 2차전지, 수소·연료전지, 스마트팩토리 등으로 직무영역을 확장해 산업안전과 환경, 에너지 전환 등 사회적 요구가 높은 분야에 실감형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발전이 뒷받침된다면, 일학습병행 실감형 콘텐츠 개발 사업은 단기적인 유행을 넘어 우리 산업현장의 안전과 직업훈련 숙련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구수진 한국폴리텍대학 석유화학공정기술교육원 교수 운영지원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