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2025년 울산, 우리는 어떤 도시를 설계했는가
상태바
[목요칼럼]2025년 울산, 우리는 어떤 도시를 설계했는가
  • 경상일보
  • 승인 2025.12.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범관 울산대학교 스마트도시융합대학 교수

2025년이 저물어 간다. 한 해를 돌아보는 지금, 건축과 디자인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울산이라는 도시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올해 울산은 수소와 에너지, 조선과 자동차 산업의 전환, AI와 스마트 기술, 그리고 환경과 삶의 질에 대한 논의가 동시에 이어진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울산은 오랫동안 대한민국 산업의 중심이었다. 조선과 자동차, 석유화학 산업은 도시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고, 2025년에도 이 산업들은 친환경과 고부가가치 방향으로 전환을 이어가고 있다. 수소 경제와 미래 에너지 도시 전략은 이제 더 이상 선언이 아니라, 도시의 일상과 산업 구조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AI와 디지털 기술 역시 도시 전반에 깊숙이 들어왔다. 교통과 에너지, 공공 서비스는 점점 더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스마트 도시’라는 개념도 추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건축과 도시의 관점에서 보면, 기술의 진보만으로 도시의 미래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럴수록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도시의 삶을 설계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오래전 필자가 영국왕립건축가협회 건축학교에서 수학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던 한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건물을 만들고, 결국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

이 문장은 건축이 단순한 물리적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의 행동과 사고방식, 나아가 도시의 문화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우리는 공간을 계획하고 만들어 나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그 공간의 구조와 질서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잘 설계된 공간은 삶을 지지하고 가능성을 넓히지만, 잘못 만들어진 공간은 불편과 비효율을 일상으로 고착시킨다. 더 큰 문제는 건축과 도시 공간이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그것을 다시 물리적으로 바꾸는 일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결국 그 공간이 만들어낸 불편함과 한계는 고스란히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감당하며 살아가게 된다.

2025년의 울산 역시 다르지 않다. 산업 시설과 항만, 주거지와 공공 공간, 녹지와 문화 공간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민의 일상과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공간적 선택의 결과다. 우리는 지금 어떤 공간을 만들고 있으며, 그 공간은 앞으로 어떤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낼 것인가.

올해 울산에서는 문화와 관광, 공공 공간, 환경과 생태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졌다. 이는 산업 도시의 이미지를 덮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도시의 균형을 다시 잡으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바다와 강, 산과 숲, 그리고 일상의 거리와 광장을 어떻게 회복하고 연결할 것인가는 시민의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다.

건축과 디자인은 이러한 변화의 결과이자 동시에 과정이다.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존재하는 공간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연결하며, 어떤 가치로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산업 도시 울산의 풍경 역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중요한 재료다.

AI 시대일수록 이러한 선택의 무게는 더욱 커진다. 기술은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그 가능성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결국 사람의 판단에 달려 있다. 건축과 디자인은 그 판단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이며, 우리가 만든 공간은 다시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도시의 방향을 오랫동안 결정하게 된다.

연말에 도시를 돌아본다는 것은 단순한 성과 점검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공간을 선택했고, 어떤 삶의 방식을 준비해 왔는지를 되묻는 일이다. 도시는 결국 공간으로 기억된다. 2025년의 울산이 남긴 건축과 도시 공간들이 다가오는 2026년에는 어떤 일상의 변화와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질지, 이제 그 기대를 책임 있는 설계와 선택으로 이어가야 할 때다.

김범관 울산대학교 스마트도시융합대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서생면에 원전 더 지어주오”
  •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 ‘청춘 연프’ 온다
  • 주민 편익 vs 교통안전 확보 ‘딜레마’
  • 전서현 학생(방어진고), 또래상담 부문 장관상 영예
  • 울산HD, 오늘 태국 부리람과 5차전
  • 2026 경상일보 신춘문예 980명 2980편 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