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천의 암각화가 세계유산이 된 뒤, 울산은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답은 거창하지 않다. 기념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일상적인 보존으로 나아갈 것인가의 선택이다. 올해 ‘암각화 발견 주간’(12월20~28일)과 울산시의 유네스코 등재 기념 학술심포지엄이 엇비슷한 시기에 열려 그런 물음을 다시 환기시킨다.
성탄절 무렵은 역사문화계에도 의미 있는 시기다.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1970년 12월24일, 반구대 암각화는 이듬해 12월25일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올해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로 반구천의 암각화는 다시 출발선에 섰다. 세계유산위원회가 인정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는 이름표가 아니라, 인류 공동의 유산을 책임 있게 보존하라는 국제적 약속이다.
18일 열린 학술심포지엄이 던진 첫 과제는 가치의 재정립이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단순한 바위그림이 아니다. 제작 시기를 둘러싼 학계 논쟁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신석기에서 청동기, 삼국시대에 이르는 장구한 시간의 흔적이며 고래사냥과 수렵, 의례와 신앙까지 담아낸 생활사의 기록이다. 그 자체로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이 같은 문화·역사적 가치에 비해 교육현장에서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중·고교 교과서에서 반구천의 암각화 서술이 축소되거나 빠진 현실은 연구성과가 교육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여전히 취약함을 보여준다.
보존의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사연댐 건설 이후 반복돼 온 침수와 노출 문제는 더 이상 학술 논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시민의 생활과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존은 행정의 결단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시민의 이해와 참여, 그리고 과학적 근거가 함께 가야 한다. 울산시가 초분광 촬영 등으로 기초 데이터를 확보하고 체계적 관리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은 필요하고도 시의적절한 선택이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올해 ‘암각화 발견 주간’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암각화박물관이 매년 마련해 온 문화·체험 프로그램에 본사 주최 ‘반구천의 암각화 사진전’까지 더해지며, 유산은 일상의 언어로 다가서고 있다. 세계유산은 전문가만의 연구 대상이 아니다. 시민이 이해하고 공감하며 자랑스러워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울산만의 유산이 아니라, 인류의 자산이다. 발견의 기억을 기념에만 머물게 할 것인지, 보존의 상식으로 확장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세계유산을 가진 도시의 책임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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