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운의 울산인물 탐구(6)]삼일회관 철거 안 된다
상태바
[장성운의 울산인물 탐구(6)]삼일회관 철거 안 된다
  • 경상일보
  • 승인 2025.12.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장성운 울주문화원 지역사연구소장

삼일회관이 곧 철거될 운명이다.(본보 11월28일자 5면) 삼일회관이 철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은 이 건물이 공업도시 울산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마지막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울산에서 문화유산이 많이 파괴되었던 때가 임진왜란과 울산이 공업도시가 될 때였다. 임진왜란 때는 왜병 침입으로 어쩔 수 없었고 공단 건설 때는 우리의 문화 인식이 낮아 그렇다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런데 외국으로부터 선진국이라는 소리를 듣는 지금 선조가 힘겹게 지켜온 삼일회관을 아파트 건립을 위해 철거한다는 것은 우리가 다시 야만국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3·1운동 직후 울산청년의 요청으로 거부 김홍조 옹의 도움으로 건립했던 이곳에서 일제강점기 벌어진 각종 애국 행사를 안다면 누구도 감히 이런 생각을 못 할 것이다.

초기 이 건물에서는 유학생 귀국 보고회가 열렸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유학 갔던 울산청년은 여름방학이면 귀국해 이곳에서 울산군민을 상대로 귀국 보고회를 가졌는데 이때마다 많은 군민이 모여 애국심을 키웠다.

1926년에는 ‘울산기자협회’가 이 건물에서 창립되었다. 동아일보 박병호, 조선일보 김기오 그리고 시대일보 강철이 주도했던 이 행사는 왜경이 개최를 반대해 여러 번 연기되었다가 3명의 기자가 왜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최하는 바람에 경찰서에 연행되어 고초를 겪었다.

1928년 신간회 울산지부가 창립 모임을 가졌던 장소도 이곳이었다. 이때도 왜경의 감시가 심해 창립 일자가 여러 번 연기가 되었다. 1930년 울산유치원이 제일 먼저 문을 연 장소도 이곳이었다. 유치원 건립에는 당시 울산의 거부 오덕상이 앞장섰다. 1930년에는 울산야학이 개최되었는데 다음 해 어린이날에는 안태노 선생이 학생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면서 애국심을 심는 바람에 왜경의 탄압을 받아야 했다.

해방 후에도 이 건물에서는 애국활동이 개최되었다. 1945년 8월에는 울산건국청년단이 조직되어 치안부재였던 울산의 혼란을 수습하고 울산에 몰려드는 재외동포를 돌보았다.

6·25때는 장병의 훈련장이 되어 이곳에서 훈련받은 학도병이 최전선으로 가 북한군과 싸웠다. 70년대는 김형석, 안병욱 등 유명 인사가 교양강좌를 했던 곳도 이곳이다.

해방 후 울산청년단장으로 울산의 혼란을 수습했던 김태근 씨는 2006년 발간한 <함월산>에서 “해방 후 한때 발호했던 모리배가 이 건물을 잡아먹으려고 했지만 이 건물이 얼마나 귀중한 역사를 갖고 있는지를 알고는 물러서 이 건물이 지금까지도 울산 문화의 전통을 지닌 단 하나의 건물로 남아 있다. 따라서 울산 문화는 앞으로도 이 건물을 바탕으로 문화의 방향이 설정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회관을 뜯고 아파트를 건립하느냐 하는 문제는 신불산에 케이블카를 놓아야 하느냐 그렇지 않아야 하는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삼일회관의 이런 역사를 안다면 누가 감히 이 건물을 철거하고 아파트를 세워야 한다고 고집할지가 궁금해진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지역사연구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 ‘청춘 연프’ 온다
  • “서생면에 원전 더 지어주오”
  • 주민 편익 vs 교통안전 확보 ‘딜레마’
  • 울산 전고체배터리 소재공장, 국민성장펀드 1호 후보 포함
  • 전서현 학생(방어진고), 또래상담 부문 장관상 영예
  • 울산HD, 오늘 태국 부리람과 5차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