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 쭉쭉 뻗다 구세주 붙잡은 손
땅 냄새 밀어내고 하늘 냄새 당기려고
눈뜨면 키재기하고 스트레칭 열 올린다
벚나무 땅속으로 영역을 키워간다
생장력 뛰어나서 은행나무 겁먹는다
뿌리도 줄기로 변신 새싹들을 피운다
잎 하나 달지 못한 은행나무 처량하다
지금은 약자 신세 힘겨루기 지고 있다
수시로 주변을 탐색 여백의 땅 넘본다
병영지구대를 앞에 둔 이곳은 도로에서 한 발만 올리면 바로 공원이다. 주변에 수령이 꽤 된 나무들이 늠름하고 듬직한 담이 돼 주고 있다. 잎이 무성한 느티나무 사이사이에 벚나무 은행나무 소나무가 간간이 보인다. 마치 느티나무 세상인 것 같은 이곳에서 생장력 좋은 벚나무가 눈에 띈다. 땅 위로 드러낸 뿌리가 줄기 되어 연둣빛 싹을 틔운다.
여러 출입구 중 돌계단을 밟고 오르면 파란색의 철봉대가 높낮이를 달리하며 설치돼 있다. 특이하게 공원이 두 개의 단을 이루고 있다. 위쪽 단에는 누군가 빈 땅에 식물을 심은 듯 줄로 둘러놓았다. 텃밭을 만들면서 나온 자잘한 돌멩이들이 나무 주변에 운치 있게 쌓여 있다. 그 나뭇가지에는 알록달록한 훌라후프가 걸려있다. 파고라 있는 곳에 아이들의 놀이 공간과 몇 개의 운동기구가 있다. 어른들이 운동을 하면서 아이들을 살필 수 있는 공간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깔아놓은 야자 매트가 흙 속에 파묻혀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이유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을 수없이 받아낸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공원 가장자리에는 담쟁이덩굴이 푸른 잎을 펼치며 자기들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주변에 있는 나무줄기를 타고 벌써 올라간 것도 있다. 공원으로 들어오는 다른 입구는 계단을 이용한 진입도 가능하다. 계단을 오르기 힘든 어른들은 걸음이 편한 길로 가면 된다. 사람들이 원래 길 아닌 곳을 밟고 다녀 땅이 단단하게 굳어 있다. 없는 길도 만들면 길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여기도 그렇다.
흙길을 밟을 때는 왠지 자연을 포근히 만나는 기분이다. 포장된 길을 밟을 때 오는 피로감을 많이 덜어준다. 맨발 등산로가 생긴 것도 건강과 직결이 되듯이 신발을 신고 흙길을 걸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위쪽 단과 달리 아랫단의 공원 느낌이 썰렁하다. 가장자리에 벤치가 놓여 있고 네모공간으로 된 안쪽은 텅 비어 있다. 어떤 놀이를 해도 공간 활용이 잘될 것 같다. 마침 공원을 지나는 사람이 있어 “여기에서 공도 차고 행사도 하나요?”했더니 공놀이도 하지 않고 행사도 안 한단다. 벤치에 앉아 그냥 텅 비어 있는 공간을 바라보는 용도인 것 같았다. 그림에서 여백을 두고 감상의 폭을 넓히듯이 여기에도 그런 적용이 되는 것 같다.
자세히 보니 고사한 큰 나무가 보인다. 벚나무가 뿌리를 왕성하게 뻗어 은행나무 뿌리를 못살게 군 것 같다. 바로 옆에 꿋꿋이 서 있던 은행나무가 생명을 다한 듯 잎 하나도 내밀지 못하고 있다. 식물도 알게 모르게 생존경쟁을 하는 것처럼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공원을 지나던 어느 행인의 전화 내용이 들린다. “오늘 일을 잘 끝내야 할 텐데 걱정이 된다.” 그 옛날 내가 자주 했던 말이어서 마음이 머문다. 여기에는 공원을 알리는 안내도는 없지만 공원등에는 이곳이 어디인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사방이 뚫린 공원으로 찬바람이 불어온다. 봄인데도 바람이 많이 차갑다. 사람들이 오가며 밟은 길을 나도 다시 밟아본다.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고단한 하루를 이겨낸 개인사가 이 길에 빼곡히 박힌 듯하다. 이 공원 여백의 땅에서 생의 조각들이 빛난다.
글·사진=박서정 수필가·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