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원이 향토기업 지켰다…고려아연 판결이 남긴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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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법원이 향토기업 지켰다…고려아연 판결이 남긴 경고
  • 경상일보
  • 승인 2025.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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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판단으로 고려아연이 상시적 적대적 M&A 위기에서 벗어나며, 울산 향토기업과 지역경제를 지켜낼 최소한의 방어선을 확보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추진해 온 미국 정부 참여 11조원 규모의 현지 제련소 건립을 위한 합작법인(JV)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해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의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 프로젝트가 정상 궤도에 오르게 됐다.

재판부는 2조8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가 경영권 방어 목적이 아닌 합리적 경영상 판단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경영권 분쟁의 승패를 넘어, 국가 기간산업과 지역경제, 산업안보 관점에서 의미 있는 판단으로 평가된다.

이 판결로 고려아연은 수개월간 이어진 적대적 M&A 위협에서 벗어나, 글로벌 핵심광물 공급망의 중심 기업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취약했던 지배구조도 일정 부분 안정될 전망이다. 미 정부와의 합작법인 JV가 고려아연 지분 10.59%를 확보하면, 내년 3월 정기주총 이사회 구도에서 최 회장 측이 우위를 점유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으로 울산 시민들이 힘을 모아 벌여온 고려아연 경영권 방어와 적대적 M&A 저지 노력의 부담도 상당 부분 줄었다. 사모펀드의 표적이 된 울산 향토기업들은 그간 단기간 재매각으로 지역경제에 상처를 남겼다.

실제로 산업폐기물처리업체인 코엔텍은 사모펀드의 ‘인수 후 단기 엑시트 전략’으로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2017년 맥쿼리PE에 인수된 이후 3년 만인 2020년 IS동서와 E&F PE 컨소시엄에 매각됐고, 5년 만인 올해는 홍콩계 사모펀드(PEF) 거캐피탈파트너스에 재매각이 추진 중이다.

2021년 말 맥쿼리자산운용이 경영권을 인수한 ‘어프로티움’(옛 덕양)은 4년 만인 올해 다시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또, 맥쿼리PE가 지분 100%를 보유한 온산 탱크터미널 운영사 유나이티드터미널코리아(UTK) 역시 7년 만에 다시 엑시트됐다.

사모펀드의 단기 수익 논리가 지역 경제와 향토기업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 중요한 것은 고려아연이 안정적 경영 환경 속에서 지역사회와 상생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실현하는 일이다. 기업 경영의 자율성과 시장 원칙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국가 기간산업과 지역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적대적 M&A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번 판결은 고려아연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산업 구조와 자본 시장의 향후 방향을 묻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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