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언론보도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2025년 수능이 끝난 바로 그 주말, 부산 벡스코 일대가 젊은 인파로 가득 찼다는 소식이었다. 수능을 마친 학생들이 향한 곳은 놀이공원도, 유명 관광지도 아닌 ‘지스타 2025’ 현장이었다. 전시와 콘퍼런스에 더해 e-스포츠 대회인 지스타컵까지 결합된 이 행사에는 게임과 e-스포츠, 코스프레, 팬 문화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들었다. 시험이 끝난 직후, 가장 먼저 선택한 공간이 게임 문화 축제의 현장이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부산은 단순히 대규모 행사를 연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의 관심사를 정확히 이해하고 하나의 공간에 완성도 높은 경험으로 묶어냈다. 더 나아가 부산 e-스포츠 경기장을 중심으로 대회와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특정 팬덤과 커뮤니티가 다시 도시를 찾을 이유를 만들고 있다. 행사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도시의 문화 인프라와 연결되며 반복 방문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울산의 ‘꿀잼도시’ 전략을 돌아보게 된다. 울산 역시 생태관광과 야간관광, 정원과 산업유산 등 다양한 문화·관광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바다와 강, 산이 가까운 도시 구조와 산업도시 특유의 스케일과 야경이라는 분명한 강점도 갖추고 있다.
이제 울산에 필요한 것은 콘텐츠를 더 늘리는 일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젊은 세대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전략을 재정렬하는 일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여행을 코스로 기억하지 않는다. 여행지는 하나의 인상, 하나의 장면으로 소비된다. 어디에 가면 무엇이 떠오르는지가 먼저 결정되고, 그다음에 일정이 만들어진다. 어디에 가면 무엇을 찍을 수 있는가는 더 이상 부차적인 질문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 관광은 많이 보여주는 도시보다, 딱 한 장면이 강한 도시가 선택받는다. 설명이 필요 없는 한 컷, 그 장면을 위해서라면 이동의 수고도 기꺼이 감수한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2026 관광트렌드 ‘D.U.A.L.I.S.M.’과도 맞닿아 있다. 앞으로의 관광은 정해진 동선을 따라 이동하는 방식보다 개인의 취향과 관심에 맞춰 선택되는 공간 중심의 경험이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관광의 성패가 얼마나 많은 장소를 나열하느냐가 아니라, 한 공간에서 얼마나 기억에 남는 경험을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관점에서 부산 광안리의 드론쇼 역시 주목할 만하다. 정해진 시간, 밤바다 위에 펼쳐지는 드론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하나의 분명한 목적지를 만든다. 언제 가면 무엇을 볼 수 있는지가 명확하고, 누구나 같은 장면을 공유할 수 있다. 화려함 그 자체보다, 한 컷으로 설명되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경쟁력을 갖는다.
울산이 앞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도 여기 있다. 이젠 도시 전반에 걸친 다양한 사업을 나열하기보다, 젊은 세대가 “울산에 가면 꼭 그 장면을 경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원포인트 관광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첫째, 울산을 대표할 단 하나의 상징적 장면을 먼저 완성해야 한다. 야간관광, 미디어아트, 드론과 빛, 음악을 결합한 콘텐츠는 시각적 몰입도가 높다. 여러 곳에 나누기보다, 하나의 장면에 집중해 도시 이미지를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e-스포츠와 페스티벌형 콘텐츠를 도시형 문화관광으로 키워야 한다. 지스타가 전시를 넘어 e-스포츠와 팬 문화를 함께 담아냈듯, 울산도 청년들이 실제로 시간을 쓰는 e-스포츠, 크리에이터 문화를 관광과 상권, 야간 콘텐츠와 연결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셋째, 찍고-공유하고-다시 찾게 만드는 운영 전략이 중요하다. 포토존을 만드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프로그램 운영, 접근성, 대중교통 연계, 안전과 혼잡 관리까지 함께 설계돼야 한다. 콘텐츠의 힘은 기획보다 운영에서 완성된다.
꿀잼도시는 사업의 개수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장면의 개수로 평가받는다. 지금 울산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설명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스스로 이야기하고 공유하게 되는 도시의 한 컷이다. 많이 보여주는 도시보다, 딱 하나의 이유가 있는 도시, 울산이 그 장면을 만들어낸다면, 도시의 이미지와 방문의 이유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라질 수 있다.
안대룡 울산시의회 교육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