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으로 온 독수리가 아이들을 채 가는 새가 아닙니까?”
겨울철이면 어김없이 걸려오는 민원 전화의 단골 소재다. 필자가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할 만큼 온순한 새”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민원인들은 “부리와 발톱이 저렇게 날카롭고 시커먼 새가 그럴 리 없다”며 쉽사리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는 독수리의 겉모습에서 오는 시각적 오해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가 울산 하늘에서 마주하는 독수리(Vulture)는 사냥꾼인 ‘이글(Eagle)’이라 불리는 수리류와는 엄연히 다른 존재다.
몽골에서 3000㎞라는 고된 여정을 지나 우리를 찾아온 이들은 약탈자가 아닌, 자연의 사체를 처리하는 ‘생태계 청소부’다.
독수리가 사람을 낚아채 간다는 공포는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새가 신의 대리자로 변해 인간을 데려간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거나, 자극적인 영상 매체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결과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검독수리가 아이를 낚아채려 했다는 영상이 화제가 되었으나, 이는 결국 정교하게 조작된 가짜 영상으로 밝혀진 바 있다. 우리나라 수리류 중 가장 큰 검독수리조차 산토끼나 꿩을 사냥할 뿐이며, 30㎏이 넘는 아이를 들어 올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더욱이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을 보면 우선 피하고 보는 것이 모든 야생동물의 본능이다.
겨울날 울산 남구 삼호동과 울주군 굴화 태화강변 하늘 위를 바라보면, 100여마리의 독수리가 제트기류를 타며 유영하는 장관을 마주하게 된다. 이때 흥미로운 장면이 포착되기도 한다. 덩치 큰 독수리 뒤로 훨씬 작은 까마귀나 까치들이 붙어 독수리의 날개를 공격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먹이터에 내려온 독수리들은 까마귀들이 위협하면 제대로 맞서 싸우지도 못한 채 옆으로 물러나거나 자리를 피한다. 독수리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온순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을 지녔다.
한자로 독수리의 ‘독(禿)’자는 대머리를 의미한다. 사체 내부로 머리를 밀어 넣어 먹이를 먹는 과정에서 털에 병균이 옮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머리 부분의 털이 빠지도록 진화한 결과다. 그런데 울산을 찾은 독수리들을 자세히 보면 머리숱이 꽤 풍성하다. 전문가들은 1살에서 3살 사이인 어린 개체들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독수리의 생태를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였다. 독수리는 죽은 동물을 처리해 전염병 확산을 막아주는 영험하고 고마운 존재였다.
야생에서 동물이 죽으면 파리와 까마귀가 먼저 몰려들고, 뒤이어 독수리가 나타나 사체를 깨끗이 먹어 치운다. 신속한 사체 처리는 탄저균이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차단하여 질병이 대지로 번지는 것을 막아냈다.
수년 전부터 겨울이면 최대 200여마리의 독수리가 울산을 찾아오고 있다. 초기에는 산에 버려진 폐사체를 찾아왔으나 먹이가 부족해지면서 탈진하거나 전선에 걸리는 등 사고가 빈번해졌다. 이에 ‘울산 독수리 아빠’를 자처한 녹색에너지 시민촉진포럼 단체에서 식육점, 식당 등에서 고기를 후원받아 ‘독수리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단순히 먹이를 주는 곳을 넘어, 독수리를 관찰하고 생태를 배우는 ‘독수리 학교’로 이어졌다. 울산시 역시 이들의 먹이를 일부 지원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독수리학교는 온순한 눈매와 약한 발톱을 가진 독수리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학습하는 소중한 현장이 되고 있다. 독수리학교를 찾은 가족들은 내년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참여신청을 받기 시작하면 빠르게 접수가 마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오전, 독수리 학교에 들러 하늘의 청소부들을 직접 만나보길 권한다.
태화강의 하루는 동틀 무렵 8만여마리 떼까마귀의 장엄한 군무로 시작해, 오전 10시경 독수리들의 성찬과 강 수면 위 오리류의 유영이 어우러진다. 해 질 녘이 되면 잠자리들기 전 떼까마귀 군무가 다 펼쳐진다. 태화강은 겨울손님 맞이로 바쁜 하루를 보낸다.
윤석 울산광역시 환경정책과 주무관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