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화 모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천동은 기뻐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사위를 보긴 한 모양이네. 자네가 자꾸 어머니라고 불러주니까 기분이 좋아. 서운한 것도 풀리는 것 같고. 자네는 이제 정말 내 새끼야. 알았지?”
“네, 어머니.”
옥화의 아버지는 두 사람 간의 대화가 길어지자 슬그머니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도 사위하고 말 좀 하자고.”
“네, 아버님!”
“훤칠한 내 사위가 아버님이라고 불러주니까 기분이 참 좋네.”
옥신각신하다가 다시 얘기를 하고, 그러는 사이에 서너 식경은 족히 시간이 흘렀다. 옥화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고서야 대화가 멈췄다.
“아침밥도 안 차리고 이게 무슨 일이래? 얼른 상 차리고 조반 먹자.”
옥화는 부랴부랴 부엌으로 달려가서 분주하게 아침 준비를 했다. 찬으로는 음식솜씨가 좋은 어머니가 준비해 놓은 과동과(오이지의 일종)와 천초를 알맞게 넣어서 맛깔스럽게 담근 김치를 기본으로 잔칫상에 올랐던 닭고기와 호박고자리(호박말랭이)를 올렸다. 지난 가을에 준비해서 겨우내 말려 두었던 시래기를 넣어서 끓인 된장국까지 준비하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아침을 먹은 후에 천동과 옥화는 다시 신방에 들어갔으나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잠이 올 리가 만무했다. 천동은 슬그머니 옥화의 허리를 당겨서 안았고, 이내 옥화의 입에서는 단내가 나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안방까지 들리자 모친은 솜으로 귀를 막았고 옥화의 부친은 슬그머니 대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날 저녁 옥화 부모는 술상을 마련한 후에 딸과 사위를 불렀다. 아침의 일도 있고 해서 네 식구는 한데 모여서 술을 마시며 기분을 풀었다. 몇 순배 잔이 오가고 취기가 오르자 부모가 먼저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곧이어 사위와 딸도 같이 춤을 추었다. 네 사람은 그렇게 모든 것을 풀어놓고 마음으로 한 식구가 되었다.
천동은 미리 말씀드린 대로 3일만 신부의 친정집에서 지내다가 송내마을로 돌아갔다. 다음 날부터 천동은 들에 나가서 열심히 일했다. 평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전에는 어두워질 때까지 일했으나 이제는 해 떨어지기가 무섭게 집으로 간다는 점이었다. 동무들이 아무리 놀려대도 그는 신혼의 재미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매일 깨소금 냄새를 풍기는 바람에 그는 동무들에게 ‘웬수’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천동은 매일 어딘가로 가서 왜군들의 동향을 알아보곤 하였다. 서생포왜성에는 왜군이 별로 없었지만 동래와 부산진에는 엄청나게 많은 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송내는 불과 하루 이틀 거리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피란 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천동에게는 무룡산에 마련해둔 동굴집과 하루 한 끼를 기준으로 최소한 2년은 버틸 수 있는 식량이 있다는 것이다. 천동이 철두철미한 성격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올해 가을걷이는 무사히 할 수 있을까?’
지아비가 된 천동은 그것이 제일 걱정이었다.
글 : 지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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