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흔히 한 해를 “잘 버텼다”고 말한다. “버텼다”는 말에는 묘한 체념과 피로가 섞여 있다. 그 말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이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이 얼마나 팽팽한 긴장 위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낸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그 ‘버팀’을 한 인물이다. 서울에 자가가 있고, 대기업에 다니며,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성공한 사람’의 모델로 제시해 온 전형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이유는 김부장의 성공 스토리가 전개됐기 때문이 아니다.
드라마 속 김부장은 일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도 계속 불안하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의 여정에 자리 잡고 있지만, 언제든 대체될 수 있으므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증명해야 하고,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물론 경제 위기로 실직을 하거나 파산하는 일들은 많은 이들에게 그리 신기하거나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 말 금융 위기 때 실직한 가장을 응원하는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 그리고 ‘사오정’(45세 지나면 정년퇴직)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미국의 경우 2008년 금융 위기로 미국 산업 침체와 함께 미국에서도 한 때 ‘빅 3’(GM, 포드, 크라이슬러)와 같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 디트로이트에서는 경쟁력 약화와 구조적 문제로 인해 일자리가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고, 많은 이들이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밀려있는 집을 버리고 타지로 떠나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러한 갑작스럽고 대규모의 경제 위기가 오지 않더라도, 기업의 상시 구조 조정으로 인해 40대와 50대가 조기 퇴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영국 감독 켄 로치는 ‘미안해요, 리키’라는 영화 속에서 이런 현실 속 실직한 노동자가 선택하게 되는 불안정한 플랫폼 노동 현장을 그렸다. 주인공 리키는 택배 배달업자이다. 회사에서는 ‘당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다. 당신이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라고 하면서 택배 배달업은 피고용인이라기 보다는 자영업자임을 강조한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새벽 배송 인력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법적으로는 ‘개인 사업자’로 분류돼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 적용이 어렵고 노동권 보호가 미흡하다.
영화의 원제목은 ‘Sorry, we missed you’(부재 중 방문했어요)에서 ‘Sorry’를 우리나라에서 번역하면서 ‘미안하다’라고 한 것 같은데, 이는 사회가 불안정한 노동 착취 현장에 있는 리키를 살피지 못해 미안하다는 중의적 의미를 포함한 것 아닐까 생각된다. 이 시점에서 전 세계의 리키와 김부장은 묻는다. “나는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왜 이렇게 힘들까?” 그 질문은 사회 전체를 향한 질문이다. 어쩌면 이제 필요한 것은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 안전망 시스템일 것이다.
흔히 뛰어나고 훌륭함을 뜻하는 ‘위대함’은 ‘김부장’ 드라마 안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재탄생한다. 우리는 앞으로 향해가라고, 더 잘하라고만 배웠지, 무엇이 위대한 것인지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무언가를 많이 이뤘기 때문에 위대한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은 순간에도 다시 일상을 붙잡고자 하는 마음, 흔들리는 와중에도 자기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그 의지에서 비로소 위대함이 시작된다. 어떤 직책으로서가 아닌 진정한 나 자신으로서 주위를 살피며 사는 것. 알고 보니 그게 가장 위대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드라마가 막을 내리듯이, 우리 모두 올해 잘 살았고, 내년에도 위대하게 잘 살 것이라고 믿으며 올해를 마무리해 본다.
오늘도 하루를 버티며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는 자신에게, 그리고 주위의 위대한 모든 이들에게 이 말을 해주면 좋겠다. “수고했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최진숙 UNIST 교수·언어인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