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덕씨는 1974년 현대중공업이 첫 선박을 진수하던 시기에 입사했다. 전공은 기계였고, 초기에는 생산설계 업무를 맡았다. 이후 IT 분야로 옮겨 설계와 전산 업무를 병행했다. 설계 단계에서는 “이 배가 과연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실제로 선박이 완성돼 진수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설계자로서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가 입사하던 시기는 조선소 전반에 인력이 대거 투입되던 시기였다. 설계 부서에만 25명이 배치됐고, 한 해 입사자 수는 500명에 달했다. 당시 울산의 모습도 지금과는 크게 달랐다.
미포에서 방어진으로 넘어가는 순환도로는 포장이 되지 않아 차량이 지날 때마다 크게 흔들렸고, 버스 기사의 판단에 따라 중간에 회차해 시내로 되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당시 휴무는 격주로 주어졌고, 토요일 근무가 당연했다. 조선업 특성상 긴급 작업이 잦았고, 갑작스러운 제작 지시가 내려오면 설계실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반복됐다. 그는 이를 ‘특공작전’이라고 표현했다.
당시에는 수주가 이어지며 일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근무 형태가 일상에 가까웠다. 김씨는 “개인의 역할보다 ‘우리’라는 감각이 강했던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설계 방식도 변했다. 입사 초기에는 대형 도면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수기로 작업했지만 이후 전산 설계로 전환되며 업무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김씨가 기억하는 당시 울산의 중심지는 중구 시계탑 사거리였다. 각 지역에서 모여든 노동자들은 회사는 달라도 함께 어울리며 생활했다. 당시 열렸던 공업축제는 이런 교류의 중심 역할을 했다.
김씨는 2014년 57세의 나이로 퇴직한 뒤 은퇴자를 대상으로 스마트폰과 미디어 활용을 교육하는 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은퇴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배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글=김은정기자 k2129173@ksilbo.co.kr 사진=김도현기자 do@ksilb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