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태의 인생수업(26)]기억이 사라져도 남는 것, 사랑이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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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태의 인생수업(26)]기억이 사라져도 남는 것, 사랑이라는 이름
  • 경상일보
  • 승인 2026.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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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

영화 ‘노트북’은 단순한 멜로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사랑과 기억, 시간과 죽음이라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을 묵직하게 건드린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노트북’이 유독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상징적인 키스 장면이나 극적인 연출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한 인간의 삶 전체를 어떻게 관통하는지, 그리고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어떻게 삶을 지탱하는지를 끝까지 보여준다.

젊은 시절 노아와 앨리의 사랑은 격정적이다. 계층의 차이와 부모의 반대, 시대적 불안은 두 사람을 갈라놓지만, 영화는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의지와 선택의 문제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사랑은 우연히 시작될 수 있지만, 지속되기 위해서는 반복되는 결단이 필요하다. 앨리는 안정된 삶보다 내면의 떨림을, 편안함보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선택한다. 진정한 사랑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조용히 설득한다.

특히 치매에 걸린 앨리에게 노아가 매일같이 같은 이야기를 읽어주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정점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안정 애착’은 기억을 공유하는 관계를 넘어, 상대의 존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관계를 뜻한다. 앨리는 기억을 잃어가지만 감정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기억을 잃을 수 있어도 감각과 정서는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사랑은 말로 설명되기보다, 존재 그 자체로 전달된다.

‘노트북’은 사랑과 시간의 관계를 깊이 사유하게 만든다. 치매라는 망각의 어둠 속에서도 사랑은 잠시나마 기억을 되살려낸다. 잃어버린 시간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다가 감각의 자극으로 다시 깨어난다. 사랑은 그렇게 시간을 넘어 인간을 다시 연결한다.

이 영화는 또한 죽음에 대해 말한다. 함께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함께 늙어가고 함께 죽는다는 것의 숭고함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이별’로 생각하지만, ‘노트북’은 죽음을 ‘동행’으로 그린다. 침대에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향해 있을 때, 사랑의 끝이 곧 삶의 완성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삶의 끝에서 손을 놓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존엄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노트북’은 눈물을 자아내는 멜로 영화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은 한 인간이 다른 한 사람을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는지를 묻는 철학적 질문이며, 불완전한 존재가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려는 인간 정신의 기록이다. 사랑은 기억보다 오래 남고, 이성보다 강하며, 시간보다 깊다. 우리가 이 영화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랑을 마음속으로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를 붙잡는 사랑, 끝까지 함께하는 용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다움. 그것이 ‘노트북’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이다.

정안태 '오늘하루 행복수업' 저자·울산안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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