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신뢰 사회는 멀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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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신뢰 사회는 멀었는가
  • 경상일보
  • 승인 2026.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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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준 변호사

어릴적에 들었던 ‘정직해야 한다’는 부모님 말씀이 기억난다. 도덕 수업이 아니라도 학교에서는 늘 정직을 강조했다. 양심이 바르고 정직하면 신뢰받을 수 있다. 정직과 신뢰는 건강한 개인 및 사회 관계의 근본적 토대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지나는 서울 서초동 법원앞 도로가에 ‘조직 사기 피해자는 노인과 서민이다. 조직 사기 터지면 돈 버는 사람은 변호사, 피해자는 끝까지 피해자로 남는 참담한 현실’ 제하 플래카드가 몇년째 걸려 있다. 유사수신의 투자 사기범을 엄벌해 달라는 피해자들의 호소가 담겼다. 수년전 갭투자 형태의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렸다. 최근에는 보이스피싱이 유행이다. 피해를 볼 뻔했다는 얘기가 주변에서도 들린다. 지능적 수법에다 해외를 거점으로 이루어지지만 국내 가담자가 있는 조직적 사기 범죄다. 사기 관련 고소사건도 많은 것을 보면 믿음과 신뢰의 사회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얼마전 산에 오르다가 휴대폰 케이스에 끼워둔 집 세콤 보안카드와 신용카드를 떨어뜨렸다가 찾은 일이 있었다. 하산하던 등산객이 주워 세콤 회사에 알렸고 세콤에서 등록된 나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와서 습득한 사람과 연락이 닿아 찾았다. 요즈음은 깜빡해 밖에 휴대폰을 놓고 왔다가 다시 가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고 한다. CCTV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바람직한 현상이다. 소위 선진국이라 하는 유럽 몇나라와는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믿음과 신뢰는 국가나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원동력이다. 신뢰는 경제 성장의 요인으로서 사회적 자본이라 불리운다. 신뢰 수준이 높아지면 사회적 비용이 절감되고 거래가 촉진되니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과 신뢰가 강한 세상이 개인들에게도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고금을 통해 신뢰는 국가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논어에 신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국가 경영에 대해 묻자, 공자는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해야 한다’고 답했다. 즉, 충분한 양식, 강한 군사력, 백성들의 신뢰가 있으면 족하다는 뜻이다. 자공이 부득이하게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하는지 묻자, 공자는 ‘병(兵)을 버려야 한다’고 답하고, 또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식(食)을 버려야 한다’고 답하면서 ‘예로부터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없는 법이다’라고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신뢰 지수는 낮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사람들을 대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두배이상 강하다는 조사가 있다(2023년 발표 세계가치조사). 또한 국내 기관들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신뢰도가 낮은데 조사대상 28개국 중 27위를 기록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2025년도 에델만 신뢰도 지표조사). 개인은 물론 정부 및 미디어 등 국내 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낮다. 신뢰 사회는 아직 멀었는가.

최근 뉴스에 보이는 권력 남용과 비리, 부패, 불법 등을 보고 있노라면 떨어뜨린 신용카드나 두고 온 휴대폰을 찾을 수 있는 세태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비리나 권력 남용은 정치와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직한 행태는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사회 전반의 불신을 가속화한다. 편파적이지 않은 엄격한 법 집행과 감시 시스템이 요구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정직과 신뢰는 위에서 모범을 보여야 확산될 수 있다. 신뢰의 회복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새해 벽두에 문득 ‘불법하지 말고 좀 정직합시다’라는 캠페인이라도 펼치는 것이 어떨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앞에서 외치면서 뒤로는 딴짓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박기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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