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위안화 결제, 단순한 유행인가 수출 돌파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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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칼럼]위안화 결제, 단순한 유행인가 수출 돌파구인가
  • 경상일보
  • 승인 2026.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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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야 UNIST 경영과학부 교수 서울대 중소벤처기업정책센터 연구위원

국제 무역의 세계에서 달러화(USD)는 난공불락의 성벽과 같다. 수십 년간 전 세계 기업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달러로 물건값을 치러왔으며, 이러한 달러 패권은 오늘날에도 주류 질서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 견고한 달러 중심의 체제 속에서 중국 위안화(RMB)라는 새로운 흐름이 가세하며 만들어내는 역동성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미 연준(Fed)의 보고서(2024)에 따르면, 전 세계 결제 시장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2.1%에서 4.3%로 급증하며 일본 엔화를 추월했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의 경제 규모 확대 때문일까, 아니면 ‘결제 통화 전환’ 자체가 무역 당사자들에게 실질적 이익을 주기 때문일까?

이 질문에 대한 실증적인 답을 찾기 위해 필자가 동료 연구자들과 수행한 연구(‘Does RMB Internationalization Promote Cross-Border Trade?’)는 며칠 전 전미경제학회(ASSA) 2026 연례 회의에서 발표됐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포함해 전 세계 수만 명의 석학이 모여 경제학의 최신 지평을 논하는 권위 있는 자리에서, 우리의 연구는 위안화 국제화라는 현상이 실제 무역 현장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규명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2006년부터 2019년까지의 방대한 기업 및 무역 데이터를 촘촘히 결합해, 결제 통화의 선택이 실제 수출 실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면밀히 분석했다.

데이터 분석 결과는 매우 선명하고도 일관적이었다. 중국으로 수출할 때 대금의 일부 또는 전부를 위안화로 결제하도록 계약한 상품들은 달러화로만 결제한 상품들에 비해 수출액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 구체적으로 위안화 결제를 도입한 기업들은 그렇지 않은 기업들에 비해 대중국 수출 실적이 약 30%가량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났는데, 이는 관세가 약 12%p 낮아진 것과 맞먹는 파급 효과다.

그렇다면 왜 위안화로 결제하는 것만으로 수출이 늘어나는 것일까? 흔히 ‘환율 변동 위험이 줄어서’라거나 ‘한국 기업이 물건값을 깎아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 연구가 파헤친 핵심 메커니즘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중국 수입업자의 비용 절감’이다.

중국 바이어 입장에서 달러로 물건값을 치르려면, 보유한 위안화를 달러로 바꾸는 과정에서 은행에 수수료(환전 스프레드)를 내야 한다. 실제로 중국 은행들은 달러-위안화 환전 시 약 0.4~0.5% 수준의 스프레드를 부과한다. 또한 중국 내에서는 위안화 무역 금융을 이용하는 것이 달러화 금융보다 훨씬 저렴하고 편리한 경우가 많다. 결국 한국 기업이 “위안화로 돈을 받겠다”고 제안하는 것은, 중국 바이어에게 환전 수수료와 금융 비용을 없애주는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셈이다.

실제로 데이터를 보면 한국 수출 기업들이 위안화 결제를 선택했다고 해서 딱히 물건 가격을 낮춰 받지는 않았다. 또한, 달러 대비 위안화의 환율 변동성이 연구 기간 내내 특별히 줄어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늘어난 것은, 가격표에 적힌 숫자와 상관없이 중국 바이어가 실제로 부담해야 하는 ‘숨은 거래 비용’이 줄어들면서 한국 제품의 상대적인 매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위안화를 받는 것이 한국 기업에 항상 달러보다 편한 것은 아니다. 달러는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지만, 위안화는 아직 활용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 결과는 우리 기업들에 중요한 전략적 시사점을 던져준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중국 시장에서 단순한 가격 경쟁이나 품질 경쟁을 넘어, ‘바이어가 결제하기 가장 편한 통화’를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위안화의 국제화는 거창한 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업들의 장부와 수출 현장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여전히 공고한 달러 패권의 질서 속에서도, 통화 선택이라는 ‘금융의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수출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거시적인 화폐의 흐름이 어떻게 개별 기업의 미시적인 성공으로 이어지는지 그 연결고리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복잡한 글로벌 경제의 파고를 넘는 지혜가 될 것이다.

이사야 UNIST 경영과학부 교수 서울대 중소벤처기업정책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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